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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 130

법은 왜 부조리한가 (레오 카츠 지음, 이주만 옮김, 금태섭 감수, 와이즈베리, 2012)

법은 왜 부조리한가 – 경제학, 철학, 통계학, 정치학으로 풀어낸 법의 모순(레오 카츠 지음, 이주만 옮김, 금태섭 감수, 와이즈베리, 2012) 이 책의 제목에 쓰인 '부조리'는 '부도덕'이 아니라 '불합리'를 말한다. 법은 왜 자주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결론을 내며 상식에 어긋하고 합리적이지 못한가에 대한 물음이 이 책의 소재다. 저자는 그것들을 '부조리'라고 했는데 사실 쉽지 않은 말이긴 하다. 차라리 저자가 책에서 썼던 구절이 이 책의 목적하는 바를 아주 잘 표현한다. "왜 우리의 형법은 도덕적 정서와 일치하지 않는 것일까?' 저자는 형법과 도덕적 정서의 불일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범주에서 논한다. 1.법은 왜 상생 거래를 거부하는가 2.법은 왜 허점투성이인가 3.법은 왜 그렇게 이..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을유문화사, 2007)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을유문화사, 2007) 은 적어도 서양인보다 동양인에게, 특히 한국인에게 와 닿는 부분이 제법 많다. 비록 한국에 대해서 언급이 전혀 없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관습적 유사함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유사점들이 한국과 일본의 불편한 관계 즉, 문화 개방을 동반한 사회 변혁기의 36년이라는 시간에서 기인함을 쉽게(또는 섣부르게) 짐작하게 한다. 한 쪽이 일방적인 권력을 휘두른 36년이라는 시간은 한 사회의 문화를, 한 국가의 관습을 좌우하는 데 넉넉했다는 그런 짐작 말이다. 모든 것이 같을 수는 없다. 수 백, 수 천년 동안 차곡차곡 쌓인 습속이 단 36년의 시간만으로 모두 변화되거나 일소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

직감은 우리를 배신한다

Our gut feelings often tell us to do the opposite of what's safe.우리의 직감은 안전을 반대하라고 자주 우리에게 말한다.- Mary Ellen O'Toole FBI 프로파일러였던 메리 앨런 오툴(Mary Ellen O'Toole) 박사는 직감(Gut Instincts, Gut Feelings)이 얼마나 우리를 잘 속이고 배신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FBI라는 작업 환경의 특성으로 인해 '범죄자'라는 명확한 위험을 다루다보니 우리의 직감이 그런 위험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민감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메리 박사는 그의 책 에서 우리가 위험을 잘 감지하지 못하는 이유 여섯 가지를 말한다. 그 여섯가지는 모두 우리의 직감을 구성하는 요소이기도 ..

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민음사, 2001)

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민음사, 2001)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는 '소유의 종말'은 곧 '공유의 증대'다. 제레미 리프킨은 글로벌 네트워크에 의해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집단과 개인과의 연결성이 극대화 되면서 근대적인 소유 개념을 공유라는 개념이 상당 부분 대체할 것이며, 특히 문화 부분에서 공유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사회의 성격이 좌우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 제레미 리프킨은 기본적인 시장의 변화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 문화, 탈근대를 가로지르며 사회적, 경제적, 철학적 고찰을 시도한다. '물리적 상품'의 지위 상실을 천명한 그의 고찰은 공유가 소유를 대체한다는 가정에 대한 개연성과 필연성을 일찌감치 끌어낸다. "우리는 시간과 ..

학생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대답 못하는 어른들

공부를 왜 하는지 학교 다닐 때는 몰랐다. 그저 어른들이 하라는대로 했을 뿐이다. (더럽게 착했다.) 지나서 생각해보면 좀 더 열심히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은 있다. '잘'이 아니라 '열심히' 말이다. 물론 공부의 순수한 의미를 생각해서 하는 얘기다. 마음에 동해서 배우고 공부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하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았으니 공부가 재미없었고, 공부를 해야 하는 별다른 이유도 찾지 못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닌 것이 이미 20여년 전이다.(헐...) 그런데 요즘도 학생들은 자신들이 왜 공부하는지 모른다. 열심히 하라고, 잘 하라고만 하지 그 어떤 어른도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왜 공부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해주지 않는지는 분명하다. 그들도 잘 모르기 때문이..

사람들은 왜 싸우는가?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비아북, 2010)

사람들은 왜 싸우는가?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비아북, 2010) 버트런드 러셀의 눈으로 볼 때 그가 을 강연했던 1916년(1차 세계대전 중)은 100년이 지난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가 말했던 목적지향적인 욕구보다는 충동이 여전히 우선하며(이라크 전쟁 따위를 보면) 인습적 성공관에 대한 탐닉은 더욱 공고해졌고 정치적 창의성을 발휘할 출구는 존재는 하지만 지금도 좁다. 행복은 물질이라는 외부적 조건에 종속되고 교육은 체제에 대한 순응의 지혜를 주입한다. 즐거움과 놀이라는 욕구는 억압되어 본능과 지성과 영혼이 어울려 성장하지 못한다. 버트런드 러셀의 눈에 1차 세계대전 시기의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었다. 그는 이라는 8회에 걸친 강연을 통해 당시의 사회를 ‘건강한 사회’로 세..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조현수 옮김, 타임기획, 2006)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조현수 옮김, 타임기획, 2006) 시민으로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자유로운가? 밀의 은 나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비록 이 같은 궁금함을 갖게 하려고 밀이 이 책을 쓰진 않았을 터이다. 오히려 에는 사회적 자유, 시민적 자유가 침해받는 상황에 대한 염려가 깃들어 있다. 150년이 지난 지금 인간의 자유를 최대한 배려하고 장려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가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밀의 시민적, 사회적 자유에 대한 염려를 몸소 실감한다. 에서 밀은 '사회가 개인에게 정당하게 행할 수 있는 권력의 본질과 한계'에 대해 논한다. 그의 논점은 시민적/사회적 자유의 보호라는 기본 명제에서 시작해 그 자유를 완성하는 토론의 자유, 인간 개별..

인간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레슬리 스티븐슨, 데이비드 L. 헤이버먼 지음, 박중서 옮김, 갈라파고스, 2006)

인간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레슬리 스티븐슨, 데이비드 L. 헤이버먼 지음, 박중서 옮김, 갈라파고스, 2006) 이 책은 다양한 철학과 종교, 사회학, 과학 이론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개론서라 할 수 있다. 다이제스트 수준의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개론서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 정도로 친절하진 않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보편적 정의도 없는 상황에서(획기적인 사건이 없다면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수십, 수백 권의 책으로 비평되고 설명되는 종교, 철학, 과학이 말하는 인간의 본성을 추려놓았으니 열렬한 지식광이 아니라면 제반 지식이 딸린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나도 제반 지식의 딸림을 체험한 부류에 속한다. 책이 친절하지 않음은 저자의 탓이 아니다.) 사실 ..

지식 프라임 (EBS 지식프라임 제작팀 엮음, 밀리언하우스, 2009)

지식 프라임(EBS 지식프라임 제작팀 엮음, 밀리언하우스, 2009) 이 책에는 다양한 분야(마케팅, 행동경제학, 일상심리, 사회문제, 판례와 법리, 식민지 역사)의 여러 '지식'이 들어있다. 딱히 어떤 정렬 기준이라거나 맥락 같은 것 없이 특정한 분야로 나뉜 챕터마다 지식들이 몇 개씩 들어앉아 있다. 그러니 아무 페이지나 펴서 내키는 대로 읽어도 그만인,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 내용 역시 무겁지 않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학습한 이론과 경험들을 흥미로운 사례들과 엮어서 쓴 글이어서 읽기 어렵지 않다. 글감들도 그렇게 낯선 것들 것 아니다. 읽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나 세상사 돌아가는 것에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 앎의 재미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한번쯤은 듣거나 읽었을..

정치인를 찾기 어려운 한국 정치

선거가 끝났다. 투표율, 당락 따위의 선거 결과야 어찌 되었든 일단 또 한번의 선거를 치뤘다. 그리고 또 한번의 아쉬움이 남는다. 항상 그랬지만 이번에도 미래를 바라보는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야당은 여당을 이기게 해달라고 부르짖었고 여당은 야당을 이기게 해달라고 읍소했다. 공약이 문제가 아니라 그저 선거에서 이기냐 지느냐가 문제였다. 야당은 여당을 심판할 수 있도록 표를 달라고 했다. 무슨 심판을 한다는 것인가? 지금 여당의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고 이루려는 바가 잘못되었다면 그것을 보완하고 바로 잡겠다고 할 일이다. 사상이 다르고 세계관이 다르다고 해서 심판하겠다는 의식은 민주주의의 것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의 여당을 여당으로 있게 한 사람들은 어찌할 셈인가? 그들이 표를 줘서 지금의 여당을 만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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