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왜 하는지 학교 다닐 때는 몰랐다. 그저 어른들이 하라는대로 했을 뿐이다. (더럽게 착했다.) 지나서 생각해보면 좀 더 열심히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은 있다. '잘'이 아니라 '열심히' 말이다. 물론 공부의 순수한 의미를 생각해서 하는 얘기다. 마음에 동해서 배우고 공부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하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았으니 공부가 재미없었고, 공부를 해야 하는 별다른 이유도 찾지 못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닌 것이 이미 20여년 전이다.(헐...) 그런데 요즘도 학생들은 자신들이 왜 공부하는지 모른다. 열심히 하라고, 잘 하라고만 하지 그 어떤 어른도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왜 공부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해주지 않는지는 분명하다. 그들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도 대부분 (나처럼) 왜 공부하는지 모르고 그저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다.
아주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교 가서 좋은 직업 얻으면 (잘 생긴 신랑, 이쁜 신부 만나서 큰 아파트에 좋은 차 몰면서) 잘 산다는 것 정도가 공부의 이유라면 이유다. 좋은 직업, 좋은 대학과 행복의 관계도 설명하지 못할 뿐더러 좋은 직업과 좋은 대학도 그 기준이 모호함에도 말이다. 이처럼 편하게 사는 것과 행복하게 사는 것을 구분 못하고 등 떠밀려 공부한 어른들이 다음 세대들에게 삶의 다른 방편을 알려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다보니 위와 같은 의문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 학생(고등학생 아니면 중학생이겠다)의 의문은 당연히 가져야 할 의문이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하루 종일 달리기만 하라고 독촉한다면 그 누구라도 의아해하지 않겠는가. 어린 놈이 되바라졌네, 생각이 짧네, 어려서 뭘 모르네, 말투가 싸가지 없네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대부분 학생들이 아마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볼 것이고 그만큼 공부하는 이유를 모르는 학생이 많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되바라진 의견에 깐족거리며 대답해줄 수는 있다. "글을 바로 읽어 다른 이의 의견을 제대로 알기 위해, 나의 의견을 글로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국어공부가 필요하며,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체득하기 위해 수학 공부를 하고(심지어 계산기를 만들 때도 수학은 필요하다), 영어는 만국 공통어이고, 화가가 되지 않더라도 미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는 교양을 쌓는 의미에서 미술 공부가 필요하다. 다 필요한 것이니 닥치고 공부해라"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그렇게 얘기하면 학생들이 얼마나 수긍할지 모르겠다. 위 학생의 글 속에는 공부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식이 이미 깔려있다. 돈만 많이 가지면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공부 않고도 돈만 많이 벌면 그만 아닌가. 수미쌍관법, 인수분해, 보일의 법칙, 들라클루아를 몰라도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만들어 놓고서 그것과는 관련 없는 공부의 의미를 얘기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다. 차라리 공부를 적당히 해야 돈도 적당히 벌고 적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고 솔직하게 얘기하든지 말이다.
공부를 돈벌이 기초 수단으로 만들어놓고서 공부의 순수한 의미를 말하는 것은 허위다. 돈이 최고라고 하면서 학생들의 꿈과 행복을 공부와 연관시키는 것도 거짓이다. 학생들은 바보가 아니어서 그런 허위와 거짓에 쉽게 넘어가지도 않는다. 학생들도 이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때문에 끓어오르는 답답함을 짓눌러가며, 내려오는 눈꺼풀을 치켜올려가며 책장을 넘기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학생들 역시 왜 공부를 하는가라는 질문에 '솔직히' 대답하지 못하는 비겁한 어른이 될 것이다.
이 문제를(문제라면 문제다) 단번에 풀어낼 해법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공부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솔직히 얘기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의 공부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알고, 그것이 바르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많아지면 공부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할테니 말이다. 비록 그 의미가 공부의 순수한 측면까지 이르지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물질적 부와 사회적 지위를 쟁취할 확률을 높이기 위한 등급 시험'을 위한 공부가 되진 않으리라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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