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대한민국 보수의 특징 - 공감 능력 부족

김성열 2014. 7. 2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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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특별법 제정을 두고 의견의 부딪힘이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해석으로 인한 오해는 제쳐두라도 두 달 전 국민 대부분이 공유했던 안타까움과 관심, 기대, 바람은 예전 같지 않다.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은 3자의 감정이 아무리 절절하다해도 피해 당사자만 못한 것은 당연한 이치고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감정이 옅어지는 것 또한 뭐라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 특별법 제정을 두고 일부 사람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드러내는 세월호 사고 유족에 대한 반감과 공격성은 보는 이를 당혹스럽게 한다. 특히 스스로를 보수라고 일컫는 몇몇 사람들의 언행은 당혹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듣기 좋은 노래도 세 번이면 지겨운데 석 달이나 시간을 끄니까. (삼 개월이 넘었어.) 우리가 배 타고 놀러 가라 그랬어요? 죽으라 그랬어요?"

- 송지현 엄마부대봉사단 부대표


"당신 뭡니까? 유가족이면 가만히 있어요." 'AI(조류독감)나 산불의 경우에도 청와대가 컨트롤타워를 맡아야 합니까?'

-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국조특위 새누리당 간사)


"자식을 잃은 슬픔은 어디에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학교 수학여행을 가다가 개인회사의 잘못으로 희생된 사건을 특별법을 만들어 보상해 달라는 것은 이치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6.25 전쟁에서 국가를 지킨 참전용사들도 힘겨운 여생을 말없이 살아가는데 특별법이란 말도 안된다고 봅니다. 재고하시여 국가의 장래도 생각해서 마무리 져 주었으면 합니다." 

-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카카오톡 메시지)



보통의 사람들은 주변의 어떤 사람이 견딜 수 없을만큼 힘든 일을 겪으면 그 사람의 감정을 공유하려고 애를 쓰고 또 어느정도는 감정을 공유한다. 비록 내가 당사자는 아니지만 타인과 공감하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바탕으로 공감을 시도하는 것이다. 경험에 의한 학습인지 인간의 본성인지는 모르지만 이는 아주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행위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위의 말들에는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감정을 공유하려는 의도가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 시스템이나 국가 지도자의 감정을 공유하고 대변하려 안달복달 한다.)


대한민국에서 자칭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다. 시위를 하다가 의도치 않게 불에 타서 죽어도, 가난에 찌들려 자살을 해도, 농산물 가격이 폭락해서 밭을 뒤집어 엎어도, 등록금이 너무 비싸 제대로 학업을 이어나가지 못해도, 심지어 국가 시스템의 부실과 부정으로 수백명의 사람이 죽어 나가도 그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그 책임이 어디 있느냐에만 골몰할 뿐이고 더 나아가 그 책임이 개인에 있다고 몰아부칠 뿐이다.


타인과 공감한다는 것은 동정, 배려, 이해, 박애 따위의 시작점이고 그것들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기본적인 고리 역할을 한다. 자칭 대한민국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기본적인 연결을 부정하는데 아주 익숙하다이는 유전이나 핏줄의 문제가 아니다. (새누리당의 많은 의원들의 자녀가 군대를 안간 것을 단순히 유전적인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그저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와 이익을 추구함에 있어 공감능력은 '비효율적인'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그 능력을 거세한 것이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그 공감능력을 강조하거나 요구하거나 발현하면 그것은 비효율적인 것, 반공동체적인 것,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밀어부친다. 자신이 공감할 수 없거나 공감하기 싫다면 그것으로 그만인 것을 굳이 나쁜 것으로 폄하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에게 불이익이 된다는 판단이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 보수의 공감능력 부족은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한 이기주의의 산물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철저히 이기적인 가치 체계를 가진 사람들이 공동체 중심의 이익과 질서 따위의 보수 가치를 (이토록 오랫동안) 대변한다는 것이 참 신통방통할 뿐이다.



보수든 진보든 결국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방편일 뿐인데 대한민국의 보수는 모두가 행복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남의 행복하게 사는 것은 자신이 불행하게 사는 것이라는 경쟁적 사고에 갇혀 있다. 나는 그들이 진정한 보수로 거듭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가능성이 너무 낮다.) 하지만 적어도 타인의 공감능력을 인정해주었으면 한다. 그들이 언제가 격한 상황을 겪게 되었을 때,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그들과 공감하려면 적어도 나의 공감능력은 불순한 것이 아니라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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