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정치인를 찾기 어려운 한국 정치

김성열 2014. 6. 5. 15:06
728x90


선거가 끝났다. 투표율, 당락 따위의 선거 결과야 어찌 되었든 일단 또 한번의 선거를 치뤘다. 그리고 또 한번의 아쉬움이 남는다. 항상 그랬지만 이번에도 미래를 바라보는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야당은 여당을 이기게 해달라고 부르짖었고 여당은 야당을 이기게 해달라고 읍소했다. 공약이 문제가 아니라 그저 선거에서 이기냐 지느냐가 문제였다.


야당은 여당을 심판할 수 있도록 표를 달라고 했다. 무슨 심판을 한다는 것인가? 지금 여당의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고 이루려는 바가 잘못되었다면 그것을 보완하고 바로 잡겠다고 할 일이다. 사상이 다르고 세계관이 다르다고 해서 심판하겠다는 의식은 민주주의의 것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의 여당을 여당으로 있게 한 사람들은 어찌할 셈인가? 그들이 표를 줘서 지금의 여당을 만들었으니 그들 역시 심판 받아야 하는가? 그들은 여당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표를 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여당과 마찬가지로 심판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여당은 도와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대통령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더니 창피한 것을 아는지 대통령은 빼버리고 밑도 끝도 없이 그냥 그냥 도와달라고 했다. 선거는 국민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이지 어떤 사람의 지위한 권력을 지키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도와달라는 말은 아무리 곱씹어봐도 지금 그들의 권력과 세력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말로 밖에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 말을 절절하게 하려고 하루에 500번씩 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의 고개 숙임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국민을 위한 일꾼을 뽑는 선거에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투표를 해달라는 그 염치는 사람의 것인가?



수도의 장을 뽑는 선거전에서 나온 얘기로는 농약과 배낭 밖에 기억이 없다. 아이들의 교육의 방향을 정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교육감을 뽑는 선거에 전교조 명단 공개를 공약으로 들고 나오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경상도는 여전히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고 있고 전라도는 민주주의 성지라는 자부심의 투표를 한다. 그나마 몇 해 전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메니페스토 같은 단어를 말하는 사람도 드물다.


모두가 예전과 별 다를 것 없이 과거에 대한 심판, 과거에 대한 향수, 과거에 대한 평가, 과거에 대한 믿음 따위에 기대어 선거에서의 승리만을 외쳐댔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선거에서 판단의 대상이나 기준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마땅하다. 하지만 과거가 선거의 대상인만큼 미래도 선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미래를 말하는 정치가를 찾기는 어려웠다.


과거에 그렇게도 연연하며 선거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만큼이나 미래도 중요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특히나 선거는 미래에 일할 사람을 뽑는 행사인만큼 후보자와 유권자 모두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후보로 나선 사람들의 대부분이 미래를 얘기하지 않는다. 그런 틀 안에서 유권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그들이 말하는 과거 안에서 판단을 하는 것이다.


A politician thinks of the next election. A statesman, of the next generation.

James Freeman Clarke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한다.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제임스 프리먼 클라크 (1810 ~ 1888, 미국의 신학자, 작가)


정치인이라면 미래를 얘기해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더 잘 살 수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더 올바르게 살 수 있는지, 그런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통해 당선되어 권력과 세력을 움켜쥐는 것에만 관심 있는 정치꾼들이 난무하는 곳이 한국의 정치판이다. 미래에 대한 관심은 오직 권력을 획득한 당사자의 미래에 국한되어 있고 유권자들은 그 틀안에서 아군이냐 적군이냐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재다.


적어도 한국 정치의 현실을 놓고 본다면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는 처칠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권력과 세력에 눈이 먼 정치꾼들만 가득한 선거판에서는 제 아무리 수준 높은 국민이라고 해도 차악을 뽑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판에는 차악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몰아가는 정치꾼들이 득시글거린다. 이 판국을 바꾸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국민만큼이나  미래를 말하는 정치인들이 출현이 절실하다.

300x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