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너나 잘해'로 들켜버린 최경환 원내대표의 충정

김성열 2014. 4. 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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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이렇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국회에서 교섭단체 연설을 했다. 안철수 대표가 기초공천폐지 공약에 대한 대통령의 나몰라라와 대통령 공약 폐지를 여당의 원내대표가 대신 사과한 것을 비판하자 최경환 원내대표가 '너나 잘해'라고 외쳤다. 대범하기 이를데 없다. 알다시피 기초공천폐지 공약의 파기에 대해 사과한 사람도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 대표다. 아무래도 안철수 의원에게 정치 잘 하라고 충고한 것은 아닌 듯 하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비단 국회가 아니더라도, 도덕적 직관에 의해서든 경험에 의해서는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짓을 저질렀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국회의원이자 집권 거대 여당의 원내 대표라는 사람이 그정도를 모를 리 없는데 왜 자신을 그렇게 (모질게) 내동댕이쳤는가 하는 부분이다. 그냥 안철수 대표가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닐테고, 뭔가 찔리는게 있었던 모양이다.


대통령 대신 사과를

새정치민주연합 쪽에서 기초공천폐지 공약을 두고 대통령과의 담판(까지야 아니더라도)을 요구했지만 대통령은 늘 그랬듯이 입을 다물었다. 대신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가 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에 사과했다. 


"국민과의 약속은 천금과 같은데 결과적으로 지키지 못하게 됐다. 고개 숙여 사과 드린다"

"잘못된 약속에 얽매이기보다는 국민께 겸허히 용서를 구하고 잘못은 바로잡는 것이 더 용기있고 책임있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참 이상한 말이다. 국민과의 약속은 천금과 같은데 또 그게 잘못된 약속이란다. 천금과 같다는 수사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의미인데 잘못된 약속이기 때문에 지킬 수 없다고 한다. 국민들이 밀어부쳐서 각서를 쓰게 한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공적인 약속(공약)을 하더니 이제 와 잘못된 약속이라고 하면 국민들 또한 애시당초 잘못된 것을 약속으로 받아낸 사람들인 것인가? 난 도무지 최경환 원내 대표가 뭔 소리를 하는지, 왜 여당 대표가 저러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못알아듣는 것은 나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게 뭔 소리냐, 여당의 원내 대표가 지금 뭘 하고 거냐고 얘기 한다. 그렇다면 최경환 원내 대표는 자기의 행동에 대해 어떤 감상을 가지고 있을까? 상황에 맞는 역할이고 조리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자신이 지금 뭔 짓을 하는지 자기도 몰라서 멘붕이 왔을까? 최경환 원내 대표가 안철수 의원에게 외친 '너나 잘해'가 그의 속심정을 알아내는 열쇠다. 이제 문을 따 보자.



쟤 뭐래 vs 너나 잘해

최경환 대표가 자신의 발언이 당당하다면, 그러니까 대통령을 대신해서 사과하는 것이 정당한 행위이고 그 말이 조리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안철수 대표의 발언에 이 정도로 대꾸 했을 것이다. '쟤 뭐래.' 사람은 자신이 생각했을 때 보편적이고 틀리지 않는 행위는 했다면, 그 행위에 확신이 있다면 다른 의견에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오히려 그 틀린(다른) 의견을 묵살하거나 하찮은 것으로 취급함으로써 자신이 한 행동의 확고함이나 확신을 더욱 강화한다.


반면에 '너나 잘해'는 감정적 반응의 결과다. 특히 심정적인 약점, 흔히 말해 아픈 곳을 찔렸을 때 나오는 말이다.  내가 한 일이 비난 받을 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남들도 그렇게 보는 것 같아서 속이 찜찜해 죽겠는데 누군가가 '너 왜 그렇게 나쁜 일을 했니?'라고 비판을 하면 빈정이 확 상하면서 '너나 잘해'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 '너나 잘해'는 상대방을 언짢게 하거나 싸움을 걸기 위해서는 꽤나 쓸모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순간 상대의 말을 인정하게 되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최경환 대표의 '너나 잘해'도 그 차원에서 이해를 하면 된다. 최경환 대표는 대통령을 대신한 자신의 사과에 대해 이게 원내 대표로서 할 일인지, 할 말인지 확신이 없을 뿐 아니라 체면 깎이는 일인 줄도 안다. 그런데 마침 국회라는 공개된 자리에서 그 아픈 부분을 안철수 대표가 쿡~ 하고 찔러 버렸다. 국회의원이라는 신분과 공개된 자리에서의 예의 따위의 이성보다 감정이 앞섰다. 그리고 그 감정은'너나 잘해'라는 말로 형상화 되었다. 




들켜버린 충정

한 발 더 나가 최경환 원내대표가 (원치 않았지만) 인정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안철수 대표의 발언 중에 최경환 대표로 하여금 이성의 끈을 놓게 한 절정의 부분은 "충정이십니까? 월권이십니까?"라는 대목일 것이다. 앞 대목인 기초공천폐지 공약을 왜 안지키냐, 왜 대신 사과하느냐는 그냥 질문으로 치부해도 된다. 하지만 충정이냐 월권이냐 묻는 것은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 따가리니?'라는 비판이다. 이 지점에서 버럭 했다는 것은 결국 최경환 원내대표가 자신이 (대통령 대신 사과를 하는 그 순간이나마) 대통령의 따까리였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최경환 원내대표의 행동은 그 사람의 지위에 상응하는 수준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안쓰럽다. 대통령 본인이 직접 했으면 최경환 원내대표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을테니 말이다. 굳이 자신의 입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입을 빌리는 대통령은 그 속이 음흉한 것인지 아니면 이런 상황을 예측조차 못하는 사고력을 가진 것인지 궁금하다. 하긴 뭔 얘기를 해야 그 속내라도 좀 짐작할 터인데 당췌 말을 하지 않으니 답답함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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