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윤여준씨, 이제 와 농담이라니요...농담이시죠?

김성열 2014. 3. 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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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이렇다.


- 밀실 논의가 있었다는 얘기인가.

"내가 왜 여기에(통합 논의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관심이 있느냐면, 이게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아야 이 자(안의원)가 나한테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 알 수 있다."


- 김한길 대표와 둘이서만 얘기를 나눠온 것은 아닌가.

"아닐거다. 그랬을 리가 없다. 일이 그렇게 안된다. 하아(한숨). 나한테 그렇게 수도 없이 새정치를 다짐하더니... 연기력이 많이 늘었다. 아카데미상을 줘야 한다."


3월 8일 토요일 아침에 펼친 경향신문 1면이었다. [윤여준 "이 자가 얼마나 거짓말했는지 알아야겠다]라는 제목은 눈에 너무 잘 들어왔다.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신당창당 건에 뭔가가 있는 것은 아닌지, 안철수 의원이 의외로 독재적이 성향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윤여준씨가 팽을 당하는 상황은 아닌지 여러 생각을 갖게 하는 기사였다. 그리고 오후가 되니 "농담이었다"라는 기사들이 올라왔다. 헐~ 이다.


농담이라니요,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일단 나는 농담이었다는 얘기를 믿지 않는다. 글의 시작에 써놓은 (기사의 핵심이 되는) 문답의 내용은 안철수 의원에 대한 윤여준 의장의 "불만"이다. 불만은 사적인 감정이다. 그냥 내 감정이 그렇다고 하는 것은 애들이나 하는 짓이다. 고희를 훌쩍 넘긴 어르신이 그냥 감정을 뱉을 리는 없다. 당연히 감정이 얼마나 합당한지를 말하기 마련이다. 위의 문답 뒤에 그런 불만에 근거가 나온다.


"창당을 해야 하는데 사람이 부족하니까 이제 막 실행위원들을 집어넣는 모양이던데. 당초에 만들었던 실행위원들이 형편없는 놈들이 많다고 해서 안 의원이 화내고 배제하고 그랬는데. 그 사람들을 다시 다 집어넣어서 시도당 발기인을 만들고 있다."


"이태규 새정치기획팀장 가버렸지, 윤석규 전략기획팀장 떠났지, 실무책임자였던 김성식 실무단장 갔지.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가 다 떠났다. 당장 창당 협상 작업을 해야 하는데 페이퍼 하나 만들 사람이 없다. 아, 정말 뭐. 내가 실무를 할 수도 없고…."


"(안 의원 본인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그러고 남보고 약속 안 지킨다고 그런다. 이거(창당 방식)만 결정되면 떠난다. 싱가포르로 놀러 갈 생각이다. 내가 창당 때까지 쭈그리고 앉아 있을 이유가 뭐 있나. 멋쩍게 창당대회에 앉아 있으라고?"


'거짓말', '아카데미상'을 운운했던 것은 윤여준 의장이 감정을 나타내기 위한 수사의 한 방편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온 얘기들은 '사실'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본인의 감정이 합당하다는 것을 말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논법이다. 이렇게까지 해놓고 농담으로 일축 한다는 것은 사람을 두고 장난치는 것 밖에 안된다.



언론의 수작?

언론이 '안철수를 까기 위해', '이간질을 하기 위해'라는 의견도 있다. 좀 웃긴다. 경향신문이 언제부터 조중동과 동급이었는가? 내가 좋아하고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불리한 기사가 나오면 악의적이라고 몰아가도 되는 것인가? 조중동이야 권력에 기생하는 습속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경향신문이 언제 권력 덕을 보기라도 했던가? 지금부터 덕을 좀 보려고? '농담'이 지나치다.


만약 경향신문이 모종의 뜻을 품고 농담을 진담으로 둔갑시킨 것이라면 그냥 농담으로 일축할 일이 아니다. 새정치연합 내부의 견고함을 의심하게 할 만한 내용이 민주당과의 신당창당과 6.4 지방선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리가 없다.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이런 악의적 행위에 대해서는 분노해야 마땅하지 농담이라는 말로 넘기거나 과장되었다고 아쉬워 할 일이 아니다. '농담', '과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미적지근함에서 그저 대충 넘어가려는 속내가 엿보일 뿐이다.


농담이든 아니든 망했어요~

농담을 한 것이라면 때와 장소를 완전히 잘못 판단한 것이다. 할 농담과 안할 농담도 구분 못하는 사람에게 정치를 맡기긴 어렵다. 그것도 이전과는 다른 새정치를 말이다. 할 말과 안할 말 구분 못하는 것이야말로 구태정치의 트레이드마크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사람을 중히 쓰는 사람의 안목 역시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안그래도 '간철수'라는 시덥지 않은 닉네임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이런 농담은 전혀 도움이 안된다.


농담이 아니라도 문제긴 마찬가지다. 새정치연합 내부의 의사소통 절차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라서다. 민주당이나 새누리당만큼 큰 조직도 아니고 정치판에서 뭣 좀 얻어먹겠다는 어중이 떠중이들이 모인 집단도 아닌데 벌써부터 의사소통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면 그 조직이 더 크게 발전할 가망성을 높게 보긴 어렵다. 게다가 단 몇시간 만에 진담을 농담으로 바꾸는 조변석개의 태도 역시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에게서 보고 싶은 모양새는 분명 아니다.



당사자가 농담이라잖아요

윤여준 의장의 찰진 농담에 대해 안철수 의원은 "과장된 것 같다. 의장님 말씀을 또 들어보자"라는 짧은 감상만을 남겼다. 당사자만 농담이면 끝나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납득할만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냥 당사자가 농담한 것이고 기자가 과장한 것으로 어물쩍 넘어간다면 그들의 정치적 진정성에 의심의 얼룩을 남길 지도 모른다.


"당사자가 농담이라잖아요" 따위의 멘트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순수함과 정의감을 담보로 정치에 뛰어든 세력이 성찰과 반성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대의를 잃는 것과 같다. 농담 한마디로 그 대의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어 불안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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