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소프트웨어 교육 의무화 방안과 대통령의 교육관

김성열 2014. 7. 2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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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3일,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 부처가 'SW 중심사회 실현 전략보고회'에서 소프트웨어 교육 의무화를 발표했다. 정부 방안의 골자는 이렇다.


* 청소년이 SW를 배울 수 있는 기회 확대

* 대학의 실전 SW 전공교육 강화 

* SW기반의 새로운 미래성장동력 창출 지원 

* SW로 제조업 고부가가치 촉진 

* 2020년까지 SW 불법복제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감소(현재 38%→20%대)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골자'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다)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훨씬 좋은 일들이다. 당면한 문제는 이와 관련한 실행안들이 어떻게 나오느냐가 되겠다. 아무리 뜻이 좋고 목표가 원대해도 결국은 실행을 어떻게 하느냐가 뜻과 목표의 가치를 매듭짓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실행의 방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넘쳐나고 있다. (벌써부터 학원을 알아보는 학부모도 있단다.)


철학이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고민은 없는 듯 보인다. 교육을 실행함에 있어 그 교육이 갖는 '철학'이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물음 말이다. 지금 정부가 발표한 소프트웨어 교육 의무화 방안만으로는 그런 철학을 가늠할 수가 없다. 기회, 실전, 미래성장동력, 고부가가치, 불법복제율(그런데 이게 소프트웨어 교육과 무슨 상관인가? 도덕, 윤리, 인성 문제 아닌가?) 따위의 말부터가 '효율'이 중심임을 잘 말해준다.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을 양성해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한다거나, GDP를 높인다거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거나, 일자리를 늘린다거나 하는 식의 경제 지표를 향상시키는 것이 주된 목표라면 효율이 중심이 되어도 좋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분야는 그렇지 않다. 교육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가를,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그 안에서 실질적 활동을 할 어린 구성원들을 어떻게 키울 것이며 그들에게 어떤 인성과 지식을 어떻게 불어넣을 것인가 하는 것들은 단지 효율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가르치고 키우는 것은 삶에 관한 문제이고 그것은 결국 철학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교육안'에서 이러한 철학에 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인성교육이 어떠니 하면서도 결국 인성과는 관계 없는 주입식 교육, 정확히 말하자면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기 위한 '과목'이 하나 느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이 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대학입시에 자꾸 부담을 주면 안된다는 것도 중요한 얘기지만 입시와 연계가 안되면 잘 배우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것(소프트웨어 교육)을 절대평가를 하든지 해서 어떻게든지 배우지 않으면 안되게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교육관

미래의 동량이 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대통령이 '대학교 입시 과목으로 추가라도 해서 억지로라도 공부하게 만들겠다'라고 한다면 이는 나라가 나서서 주입식 교육을 하겠다라는 말이다. 당사자의 좋고 싫음과 관계 없이 지식을 억지로 머리에 집어넣는 것을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말이 좋아 교육이지 사육과 다름 없다. 한 국가의 수장이 가진 교육관이 이 정도 밖에 안된다니 암담하기 이를 데 없으며 혹시 이것이 대통령이 말한 '국가 개조'의 한부분이 아닐까 하는 염려까지 된다. (과연 지금 대통령에게 깊은 생각, 남다른 인식의 분야가 있기는 한건가?)


만약 대통령이 인식하는 교육관으로 모든 것이 잘된다면 입시와 연계된 과목들에서 세계적인 석학들과 인재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학생들이 공부는 좀 많이 하나?) 그런데 입시와 연계가 되어 있는 과목을 '억지로 배운' 학생들의 상태는 다들 알다시피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공부'는 내부 경쟁의 도구에 전락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결국 억지로 잘 배운 학생들은 그저 변호사, 판사, 검사, 변리사, 세무사, 5급 공무원, 7급 공무원, 삼성직원, LG직원, 현대직원이 될 뿐인 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맨얼굴이다.


교육에 있어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지 배우지 않으면 안되게 하는 노력'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이유'이고 '가르쳐야 하는 이유'이며 그것이 인간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이다. 그런데 이번 소프트웨어 교육 의무화에는 그러한 철학적 고민은 없다. 어떤 교육이 근본적인 철학도 없이 지식의 습득만 강요한다면 그 교육은 교육을 받는 사람과 그 사람의 삶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얘기 밖에 안된다.


국가의 실리

정리하면,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없는 많은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과목이 하나 늘어난 것 뿐이다. 몇몇 학생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 맞지만 그런 선택이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는 없다.(그래도 모두가 배워야 한다.) 그리고 국가의 입장에서는 '괜찮은' 노동자를 더 얻고자 하는 국가 중심의 실리적 계획에 지나지 않는다. 인재양성이니 뭐니 하지만 '인재'라는 말은 때때로(사실은 자주) '평범한 노동자들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를 가르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게 현실이다.



철학도 없는 주입식 교육을 통해 인재를 만들겠다는 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말장난으로 뭔가 대단한 계획, 원대한 목표를 도모 하듯이 구는 것은 삼가야 한다. 오히려 교육에 관계한 부처들은 (나아가서 정부는) 교육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고민,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고민을 해야 한다. 대통령은 길어봤자 5년이고 장관도 한철 메뚜기 같은 신세지만 그래도 나라는 좀 더 오래 가니까, 대통령의 자손, 장관의 자식들도 오래오래 이 나라에 살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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