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영화 The Human Race - 누가 인간의 경쟁을 주도하는가

김성열 2014. 8. 27.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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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man Race (폴 허프 감독, 미국, 2012)


80명의 사람들이 문득 한 곳에 모인다. 이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며 그것을 밝히는 것 따위는 중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성직자부터 운동선수, 장애인, 거동이 불편한 노인, 임산부.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각자의 목소리로 규칙을 듣는다. 멈추면 죽는다, 길이 아닌 풀을 밟으면 죽는다, 추월 당하면 죽는다, 집, 학교, 감옥은 안전하다. 우왕좌왕하는 통에 누군가가 시멘트 길 위에서 밀려나 풀을 밟는다. 첫번째로 룰을 어긴 그녀는 순식간에 머리통이 터지며 죽는다.


사람들은 달린다. 일단은 살기 위해서다. 왜 달려야 하는지 의심을 품는 것은 잠시다. 의심을 품는 사이 누군가는 나를 앞질러 달려간다. 그들이 달리는 경로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작과 끝이 이어져 있는 시멘트 길이다. 끝이 없으니 멈추지 않고 달리는 수 밖에 없다. 80명이 다 죽어야 경주가 끝날지, 아니면 누군가는 살아남을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어느새 달리는 이유 따위는 잊어버리고 남보다 더 앞서기 위해, 추월당하지 않기 위해 달린다. 성직자는 기도를 한다. 하지만 레이스 구간을 벗어났기에 죽는다. 실수로, 혹은 자진해서 풀을 밟은 사람도 어김없이 죽는다. 다리를 다친 어린 남매는 추월을 당하는 순간 죽는다. 룰은 명쾌하고 정직하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누군가 나서서 사람들을 멈춰 세운다. 집에서는 달리지 않아도 안전하다. 일단 달리지 말자. 하지만 배신자가 나온다. 사람들은 다시 달린다. 경쟁에 대한 관심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기는 악랄한 인간들도 본성을 드러내며 경쟁자들을 풀밭에 던져 넣는다. 순수해보였던 농아 커플마저도 육욕을 두고 상대의 죽음을 위해 싸운다. 달리다 죽는 사람보다 경쟁자들끼리의 싸움으로 죽는 이들이 어느덧 많아진다.


살아남은 사람은 전쟁에서 다리 하나를 잃은 전직 군인이다. 싸우기를 극구 피했던, 그저 자신이 위협받았을 때에만 싸웠던 그 사내만이 레이스의 덫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는다. 하지만 이 레이스를 만든 '에서로드'는 살아남은 그를 또다른 경쟁의 장으로 보낸다. 그곳에도 룰과 경쟁자가 있다. 이기면 또 무엇이 있을지 모른채 그는 목발을 탕탕거리며 경쟁자를 향해 달음질친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에 대한 실랄한 은유다. 자신은 온데간데 없고, 무엇이 목적인지도 모른 채 경쟁하며 타인의 패배를 바란다. 그것은 사람의 인성이나 직업이나 지위와는 관계가 없다. 자본주의 세계에 들어온 이상 자본주의가 정한 규칙을 어기면 비참한 패배가 있을 뿐이다. 이기기 위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해도 상관 없고 자신의 공포를 타인에게 폭력으로 전가해도, 타인의 믿음과 정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해도 상관이 없다. 자본주의가 제공한 레이스에 참가한 사람은 머리 하나로 셈이 되는 무의미한 존재다.


규칙은 거부할 수 없고 레이스 역시 거부할 수 자는 없다. 다만 경쟁을 거부할 수는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쟁의 승리를 위한 투쟁 대신 자신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철학자만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철학자조차도 규칙을 지배하는 권력에서는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 권력이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면 그것을 따라야 할 뿐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경쟁을 거부하며 경쟁의 덫에 걸리지 않는 것 뿐이다.


자본주의가 경쟁을 강요하며 경쟁에서 뒤쳐진 자들에게 조금의 자비도 없다는 사실은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에 대해, 파괴성과 잔인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자본주의를 지배하는지, 자본주의의 규칙은 누가 만드는지, 자본주의의 최상의 권력자는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러니 자본주의에 반기를 드는 것은 가늠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허무한 항거가 되며 자본주의의 안에서는 소소한 사건에 머문다.


인간의 경쟁을 주도하는 그것의 실체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경쟁에 몸을 담고 거대한 승리를 부러워하고 적당한 승리를 맛보는 것이 더 안락하다. 자본주의는 무엇의 허울이며 인간의 경쟁을 주도하는 실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기 전에는 그렇게 사는 것이 편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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