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이범균 판사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김성열 2014. 9. 13. 12:15
728x90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개입 혐의에 대해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여기가 뉴스가 끝이었다면 '너무하네~' '그러면 그렇지~' '아놔~ 씨X~'정도의 한탄이 쏟아져나왔을 것이다.(물론 현 정권의 지지자들은 빼고) 그런데 이번 법원의 판결은 그런 한탄조차 삼키게 했다. 대선개입 혐의는 무죄지만 정치관여 혐의는 유죄라는 실로 창의적이기 이를 데 없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선 정국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는 정치적 관여를 했는데 그 둘은 연관성이 없다는 희한한 판단을 법원이 들고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대부분 어안이 벙벙해서 '이게 뭔 소리야...' 하고 있는 마당이다.


상식의 눈으로 봤을 때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대선 정국에 개입한 것은 너무 명백하다. 대통령제를 선택한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통령 선거는 정치의 일부분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특정 정치 세력과 정치인을 두둔하고 경쟁 위치에 있는 정치 세력과 정치인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행위가 선거와 무관하다는 논리는 비상식을 넘어서 억지다.


주어가 없으므로...

이번 무죄 판결의 취지는 국정원이 댓글 활동을 한 시기에는 대선 후보의 윤곽이 명확하지 않았으므로 특정인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한 행위였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결 취지는 그 유명한 '주어가 없으므로'와 다르지 않다. 특정한 누군가를 지칭해야 선거개입이 된다는 논리는 선거가 정당 간의 세력 다툼 양상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정당정치 체계를 전혀 염두하지 않은 부족한 논리다. 


이는 수많은 이가 지적하고 있는 사항이므로 더 이상 미주알 고주알 논할 생각은 없다. 어디 집권세력에 유리한 판결이 내려진 것이 한두번이었는가. 내가 궁금한 것은 이런 허술한 판결을 한 이범균 판사의 내적 동기(motive)다. 현직 대통령, 집권 여당, 국가 기관이 관련되어 있는 민감한 사안에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온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텐데, 혹시나 그 이유가 우리 사회의 피지 투성이 민낯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불안이 앞선다.


양심에 따른 판결

헌법 103조에 '판사는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며'라고 되어 있다. 아마 이번 재판을 담당한 이범균 판사에게 묻는다면 그는 양심에 따라 판단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정말로 이범균 판사의 양심에 전혀 꺼릴 것이 없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왜냐하면 상식적인 판단을 내릴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이 판사 자리에 앉아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범균 판사는 20년 가까이 판사 생활을 한 사람이다. 그의 판단 능력은 그의 경력이 대변해준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은 이범균 판사의 자질이나 판단 능력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치적 신념

혹시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판결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다. 정치적 신념은 공리(公利)의 방식과 형태를 정한다. 이범균 판사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의거해 판결이라는 공리를 실현했다면 문제는 크다.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정장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 축소/은폐 혐의에 대해 무죄를 판결한 것을 두고 그의 정치적 성향을 단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때 유우성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도 이범균 판사다. 지금 상황에서 그가 일관된 정치적 성향이나 신념으로 판결을 했다고 보기에는 무리다.


개인의 입신영달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 부장 판사가 법원 내부 게시판에 이번 판결을 궤변이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김동진 판사는 이번 판결이 정의를 위한 판결인지, 재판장이 고등법원 부장 판사 승진 심사를 목전에 두고 입신영달을 위해 사심을 담아서 한 판결인지 물으면서 자신은 후자일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동진 판사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를 빗대여 이범균 판사를 비판했다. 지록위마는 진나라의 환관 조고가 권세를 앞세워 신하들로 하여금 황제(호혜)가 보는 앞에서 사슴을 말이라 칭하게 했다는 데서 나온 고사다. 이는 권세를 휘둘어 사람을 겁박하는 것을 이르기도 하고 아랫사람의 권세가 위계질서를 뒤집을 정도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동진 판사의 비유도 아주 틀리진 않다. 황제인 국민에게 신하인 판사가 사슴을 말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김동진 판사의 생각처럼 이범균 판사가 자신의 입신영달을 위해 정권의 편을 드는 판결을 한 것이라면, 나는 차라리 춘추시대 제나라의 간신 역아(易牙)의 고사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판사가 양심을 저버리고 입신영달을 위해 자발적으로 정권에 유리한 판결을 내린 것은 역아가 제환공에게 아첨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삶아 바친 것과 다를 바 없다.


차라리 이범균 판사에게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논의는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추측은 사람을 참 서글프게 한다. 이번 판결이 정말로 이범균 판사 개인의 입신영달을 위한 것이라면 김동진 판사의 말처럼 법치주의는 죽은 것이다. 정치적으로 분명히 독립해 있고 독립을 보장받은 사법부가 스스로 정권에 기대어 자신의 입신과 영달을 추구하는 자들의 소굴이라면 국가의 중요 시스템인 삼권 중 하나에 금이 간 것이다. 지금의 야당 세력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권력에 기대어 단물에 취했던 기억이 있다면 자들이라면 권력이 바뀌더라도 또 그러한 행태를 보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차라리 이범균 판사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그의 능력이 모자람이 아니고, 정치적 신념의 발휘가 아니고, 입신양명을 위한 자발적 굴신이 아니길 희망한다.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권력의 겁박에 의해 원치 않는 판결을 내린 것이길 희망한다. 정권의 비루함과 추접함을 확인하고 신뢰를 포기하는 것이 사법부를 잃는 것보다 백배는 낫다. 정권은 바꿀 수 있지만 사법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정권에게서 희망을 찾는 것은 우물가에서 카페라떼 찾는 것과 다름 없다. 그러니 차라리 이범균 판사에게서 희망을 찾는 것이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300x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