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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레슬리 스티븐슨, 데이비드 L. 헤이버먼 지음, 박중서 옮김, 갈라파고스, 2006)

김성열 2014. 6. 1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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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레슬리 스티븐슨, 데이비드 L. 헤이버먼 지음, 박중서 옮김, 갈라파고스, 2006)


이 책은 다양한 철학과 종교, 사회학, 과학 이론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개론서라 할 수 있다. 다이제스트 수준의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개론서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 정도로 친절하진 않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보편적 정의도 없는 상황에서(획기적인 사건이 없다면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수십, 수백 권의 책으로 비평되고 설명되는 종교, 철학, 과학이 말하는 인간의 본성을 추려놓았으니 열렬한 지식광이 아니라면 제반 지식이 딸린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나도 제반 지식의 딸림을 체험한 부류에 속한다. 책이 친절하지 않음은 저자의 탓이 아니다.)


사실 읽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30년 동안 손질을 이어온 책이라 정리도 잘 되어 있고 중요한 통찰이라 여길만한 의견과 사상들 중심이라 안정감이 있다. 문제는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확실한 통찰이 생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싸워대는 이론들 사이에서 감히 어떤 정의에 손을 들어줄 엄두가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섣불리 나만의 정의를 내리기는 더욱 어렵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자신만의 통찰을 (조금이라도) 얻으려 했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미궁을 헤쳐나가는 테세우스의 실타래와 단검이 아니라 미궁으로 나를 몰아넣는 미노스 왕인 것이다. (헤쳐 나가든지, 아니면 죽든지.)


미궁 속을 헤매다 든 생각은 ‘이 미궁의 출구는 어딜까’가 아니라 ‘이 미궁은 어쩌다 만들어진 것일까’라는 궁금함, 즉 왜 인간은 인간의 본성을 그렇게 알고 싶어할까라는 의문이었다. 책에서 소개한 10가지 이론(실제로는 10가지가 넘는다고 봐야 맞다)의 범주는 제 각각이다. 수 많은 곁가지를 지닌 종교, 철학, 과학 따위의 전통적이고 포괄적인 학문과 사상 체계들이 인간의 본성을 설명한다. (어설픈 환원주의일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학문과 사상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서 의문에서 출발한다.(답까지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을 알고자 하는 욕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려는 욕망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관해서라면 나는 여전히 미궁 안에 갇혀 있다. 별다른(기적에 가까운) 일이 없다면 평생 이 미궁 안에서 살다가 그 출구를 모른 채 살아갈 확률이 크다. 하지만 이 미궁이 왜 만들어졌는지, 인간은 왜 왜 미궁을 빠져나가려 애를 쓰는지는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 모두들 행복하게 잘 살려고 그 주체를 분석하고 해석하고 정의하려 애쓰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잘 살려고, 행복하려고 애쓰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자 인간의 본성이 추구하는 가치의 하나로 보편적 동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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