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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싸우는가?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비아북, 2010)

김성열 2014. 6. 2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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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싸우는가?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비아북, 2010)


버트런드 러셀의 눈으로 볼 때 그가 <사회 재건의 원칙>을 강연했던 1916년(1차 세계대전 중)은 100년이 지난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가 말했던 목적지향적인 욕구보다는 충동이 여전히 우선하며(이라크 전쟁 따위를 보면) 인습적 성공관에 대한 탐닉은 더욱 공고해졌고 정치적 창의성을 발휘할 출구는 존재는 하지만 지금도 좁다. 행복은 물질이라는 외부적 조건에 종속되고 교육은 체제에 대한 순응의 지혜를 주입한다. 즐거움과 놀이라는 욕구는 억압되어 본능과 지성과 영혼이 어울려 성장하지 못한다.


버트런드 러셀의 눈에 1차 세계대전 시기의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었다. 그는 <사회 재건의 원칙>이라는 8회에 걸친 강연을 통해 당시의 사회를 ‘건강한 사회’로 세우기 위한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해법이 옳은가 틀리는가를 떠나, 그 후의 수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당대 최고의 사상가가 제시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해법이 통용되었는가를 묻는다면 긍정적인 대답을 하긴 힘들다. 왜냐하면 이미 100년 전에 그가 제기한 문제들이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과 지금의 사회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달라진 것은 외형적인 것들 뿐이다. 사람이 더 많아졌고 기술은 발달했으며 더욱 풍요롭고 복잡하다. 하지만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정치체제나 경제체제는 100년 전과 비슷하다. 또한 이 모든 것을 인간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결국 인간과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버트런드 러셀은 사회를 ‘재건’해야 한다고 했지만 (강연 제목이 Principles of social Reconstruction 이다) 그 단계는 이뤄지지 않은 채 성장만 거듭해왔다.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성장의 수확으로 문제를 상쇄시켜 온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이겠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면 그 때나 지금이나 문제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버트런드 러셀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위대한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위대한 희망을 품지 않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대로 지금 우리 사회의 재건을 위해 필요한 것은 본능과 지성과 영혼이 성장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에 대한 대중의 희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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