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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왜 부조리한가 (레오 카츠 지음, 이주만 옮김, 금태섭 감수, 와이즈베리, 2012)

김성열 2014. 7. 1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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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왜 부조리한가 – 경제학, 철학, 통계학, 정치학으로 풀어낸 법의 모순

(레오 카츠 지음, 이주만 옮김, 금태섭 감수, 와이즈베리, 2012)


이 책의 제목에 쓰인 '부조리'는 '부도덕'이 아니라 '불합리'를 말한다. 법은 왜 자주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결론을 내며 상식에 어긋하고 합리적이지 못한가에 대한 물음이 이 책의 소재다. 저자는 그것들을 '부조리'라고 했는데 사실 쉽지 않은 말이긴 하다. 차라리 저자가 책에서 썼던 구절이 이 책의 목적하는 바를 아주 잘 표현한다. "왜 우리의 형법은 도덕적 정서와 일치하지 않는 것일까?'


저자는 형법과 도덕적 정서의 불일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범주에서 논한다. 1.법은 왜 상생 거래를 거부하는가 2.법은 왜 허점투성이인가 3.법은 왜 그렇게 이분법적인가 4.우리는 왜 악행을 모두 처벌하지 않는가.


상생 거래의 거부는 법이 양 쪽 모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법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중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서로간의 양보 전제하기 때문에 따르기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손해를 감수하는 개념이다.) 법의 허점은 법률과 입법 취지의 불일치를 말하고 법의 이분법은 반드시 어느 한쪽을 피해자로, 다른 한쪽을 가해자로 만드는 법의 완고함을 말한다. 법이 악행을 모두 처벌하지 않는 경향은 '과소범죄화'에 관한 얘기다. 쉽게 말해 우리가 도덕적으로 불쾌하게 여기는 수 많은 행위에 대해 모두 죄를 묻지 않는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 네 가지 의문에 대해 나름대로의 경험과 논리로 해답(이라기 보다는 이유)을 제시한다. 그 풀어가는 과정은 상당히 지난하다. 첫 문제(법의 상생 거래 거부)부터 응급 순위 순환론, 사회선택이론 따위의 쉽지 않은 얘기들이 나와 읽는 이를 버겁게 한다. 그리고 그 논리들은 다음 문제들에서도 계속 언급되어 버거움은 계속된다. 그 버거움이 저자가 말하는 모든 문제의 이유가 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저자는 법의 결정이 '순위 매기기'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직관이 상충할 수 있으며 선택을 어렵게 하는 역설을 낳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법의 의사 결정을 투표와 유사한 '다기준 의사결정 장치'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법은 어떤 쪽이 옳거나 그르거나를 확연히 정할 수 없을 뿐더러 조작마저도 가능한 불완전한 의사결정 체제라는 것이다. 그러니 형법과 도덕적 정서의 불일치는 피할 수가 없고 수 많은 '억울한' 사람을 낳는 것이다.


여기서 법의 의사결정 기준을 유추할 수가 있다. 법은 어떤 것이 확고한 정의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선택할 뿐이다. 앞에서 말한 '투표와 유사하다'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법전에는 어떤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인지 정답이 나와 있지 않다. 법을 해석하는 사람(변호사, 검사, 판사)이 법전을 가이드로 삼아 자신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손을 들어 줄 뿐이다. (손을 들 때는 아주 완고하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나!'라는 외침은 정서와 법의 괴리를 답답해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이 (지금까지 그랬듯이) 법과 정서의 간극을 채워줄 동기가 되진 않는다. 법은 원래 그랬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죄를 지어도 대기업 회장은 불구속이고 일반인은 구속이다. 정상 참작은 그 정도가 정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사람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쿠데타도 성공하면 합법적이다. 쿠데타에 대한 법의 규정이 문제가 아니라 쿠데타에 어떤 가치를 매기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나름대로 이러한 문제들의 원인을 밝혔다. 하지만 그 문제를 풀어낼 방법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렇다고 실망스럽거나 무책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법의 부조리는 결국 인간의 부조리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한 법학자에게 인간의 부조리를 바로 잡아달라고 하는 것도 부조리라면 부조리니까 말이다.


* 포스팅을 하다보니 마침 제헌절이다. 재미있는 우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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