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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1998)

김성열 2014. 7. 2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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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1998)


인간은 스스로와 타인을 기만한다. 자신의 합리화를 위해, 이익을 위해, 권위의 보존을 위해 기만하고 기만 당한다. 기만을 하는 쪽에게나 당하는 쪽에게나 궁극적으로는 살기 위한, 때로는 살아남기 위한 방편의 하나다. 인간에게 생존의 욕망은 예의 간절하고 절박하다. 그래서 인간의 기만은 강압과 폭력의 모양새를 취하기 일쑤다. 인간은 그렇게 타인과 자신을 강제해 기만의 산물을 보편적인 행위 양식으로 규정하고 타협을 통해 서로의 생존을 용인한다.


기만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설사 죽음으로 기만의 사슬을 끊으려 든다 해도 그 죽음조차 기만의 산물이 될 수 있다는 가정을 외면할 수 없기에 죽음조차도 기만을 극복하는 방법이 아니다. 이미 기만과 엮여 있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죽을 수도 없는 것이다.


쓸데 없이 나는 그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자문한다. 대관절 그가 죽을 수 있는 걸까? 죽는 것은 모두가 그 전에 일종의 목표를, 일종의 행위를 가지며, 거기에 부대껴 마모되는 법이거늘 이것은 오드라덱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 <가장의 근심> 中


기만을 극복하는 방법은 또 다른 기만이다. 기만과 그 안에 강건하게 버티고 있는 강압과 폭력을 보편적인 것으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올바른 것으로 다시 한번 기만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기만은 효과가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당혹해 할 필요는 없다. 기만의 효과가 다했다 싶으면 또다시 기만을 행하면 된다. 


오늘날로부터 보건대 저는 최소한 살고자 한다면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 출구는 도망쳐서는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하기라도 했던 것 같습니다. 도망이 가능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믿고 있습니다, 원숭이는 언제나 도망칠 수 있다고요.


되풀이하겠습니다만 인간들을 모방하고 싶다는 유혹은 없었습니다, 저는 출구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모방했습니다, 다른 그 어떤 이유에서도 아니었지요.

- <학술원에의 보고> 中


언제든지 기만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거나 지금의 기만은 결국 기만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정도의 의식(이 역시 기만이다)만 바닥에 깔아두면 기만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연이든 노력의 결과든 간에 인간과 세상에 녹아있는 기만을 인지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기만은 강압과 폭력의 모양을 취하기에 기만을 인지하는 것은 강압의 공포와 폭력으로부터의 상처를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의 사람들은 공포와 상처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기 위해 기만과, 그 기만의 뿌리인 강압, 폭력과 타협을 한다. 그 결과 기만은 일상화되고 진실은 기만과 거부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도무지 이 끊임없이 같이 있음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이 있단 말인가, 우리 다섯에게도 그것은 아무런 뜻이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미 같이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결합은 원하지 않는다.

- <공동체> 中


카프카는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기만과 그것의 강압성, 폭력성을 인지했다. 하지만 그것과 타협을 하지 않았다. 그런 카프카의 비타협은 그로 하여금 공포와 상처를 절감하게 했다. 벌레가 된 그의 등에 박힌 사과와(<변신>) 뿌린 씨를 거두려는 듯한 태도의 아버지로부터 들은 익사형의 선고(<판결>)는 선명한 공포와 상처다. 그런 아버지와 타협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기만하지 못한 그에게 공포와 상처는 그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는 한 지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카프카는 죽기 전에 자신의 남은 작품들을 없애달라고 유언했다. 단순한 죽음이 아닌 존재 자체의 사라짐만이 그의 공포와 상처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기만할 용기, 기만과 타협할 용기가 없었던 없었던 그의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결국 카프카는 기만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는 있었지만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상이 말하는 자유가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통을 선택한 그의 용기는 기만하는 용기, 강압과 폭력과 타협하는 용기보다 더 절박했다.


제게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자유란 선택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언제나 전제로 하고요.

- <학술원에서의 보고> 


카프카는 기만에 의해 선택의 필요를 빼앗긴, 절박함을 거세당한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기만과그것을 지속하고 유지하기 위한 강압의 공포, 폭력의 상처를 깨닫게 한다. 카프카는 그렇게 스스로 들춰보지 않는 우리의 기만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그래서 카프카는 위대하며, 그래서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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