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명절이 없으면 명절 스트레스도 없다

김성열 2014. 1. 27. 19:00
728x90


일 년에 두번, '명절 스트레스'라는 말이 대유행을 한다. 한 때는 명절에 부엌일로 고생해야 하는 주부들에 대한 말이었으나 이제는 그 범위를 넘어섰다. 주부들의 식모살이는 여전하고 남편은 고된 운전에 아내의 눈치를 봐야한다. 아이는 학교 성적에 대해 묻는 친척 어른들의 물음에 말문이 막히고, 나이가 꽉 찬 처녀총각들은 결혼 안하냐는 채근에 짜증이 난다. 직업이 없는 백수는 주변의 한심하다는 표정과 눈길을 감래해야 하고, 평소에 전화도 별로 없다가 명절이라고 몰려든 사람 탓에 노인네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개인화 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혈연에 대한 향수인지, 한민족의 DNA에 각인된 기계적인 습속인지, 반짝반짝 빛나는 미풍양속인지를 떠나서, 명절이야말로 스트레스 안받는 사람이 드물다. 고유한 전통이고, 고작해야 1년에 두 번이며, 이 때 아니면 가족들 언제 모이겠냐하는 항변도 있지만 갓난애들 빼고는 정신적 스트레스 안받는 사람이 드물고, 설과 추석을 지난 달이면 11%나 이혼률이 증가하는 명절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말하는 사람에게 달렸다

"가족 구성원이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가사 활동을 분담하고, 의사소통을 부드럽게 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 한국가정법률상담소 XXX 부장


 (1)"결혼은 언제 할거냐"는 말 대신 "하는 일은 어떠냐"는 안부를 (2) "취업은 됐냐"는 말 대신 "힘내라"는 격려를 (3) "애는 어느 대학 갔냐"는 말 대신 "고생했다"는 위로를 - 모보험사 블로그 중에서 발췌


"남편은 시댁 식구들 앞에서 아내에게 핀잔을 주거나 지적하는 대신 '잘했다' '고맙다'며 칭찬의 말을 건네도록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생했다'며 아내를 안아주면 스트레스는 더 빨리 해소될 수 있다. - 모심리센터 원장


"명절 때 무슨 말이 가장 아팠나요?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어도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어요. 제발 '왜 아직 결혼하지 않느냐?' '왜 애가 없느냐?' '왜 취직 못 했느냐?' '왜 재수하느냐?' 등의 말들은 좀 참아주세요." - XX스님 트위터


인터넷을 뒤지면 금방 찾을 수 있는 명절 스트레스 줄이는 해법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의 태도를 실마리로 하고 있는 것이다. 말을 좀 생각해서 하면 그나마 낫다는 얘긴데, 원칙적으로 동의는 한다. 사실 아무것도 안물어보고 아무 말도 안하면 제일 편할 것이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도 상대에게 스트레스를 주겠다는 의도는 아닐 것이며, 스트레스를 주는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저 좋은 말이 나오길 바라고만 있어야 한다. 이 상황도 속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까짓거 한번 째자

가고 싶은 곳도 간다 해도 환경이나 상황 덕분에 기분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가기 싫은 곳에 가서 듣기 싫은 소리 듣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한다는 것은 유쾌하지 않음을 떠나서 가혹한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갈고 닦는 정공법과는 거리가 먼 방법이지만, 눈 딱 감고 명절 가족 모임에 불참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러면 욕 먹을 확률이 높은 것은 안다. 하지만 욕 먹어서 스트레스 받는 것과 돈 들이고 시간들여 왔다갔다 고생고생하며 스트레스 받는 것을 비교하면 그냥 욕 먹고 스트레스 받는게 더 낫지 않나는 생각이다.


부부라면 둘이 짝짝궁을 맞춰서 시댁도 안가고 처가에도 가지 말자. 백수라면 중요한 면접이 있다고 하고 도서관으로 도망가자. 학생이라면 밀린 공부에 시험이 코 앞이라 갈 수 없다 하자. 결혼 적령기의 처녀총각이라면 일 핑계를 대고 버티자. 처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한두번 안가면 나중에는 그려러니 한다. 1년 가야 몇 번 보지 않는 가족들인데 그렇게 하는 건 너무 야박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가야겠다는 말이니 더 할 말이 없다. 진짜 가고 싶지 않다면, 가서 스트레스만 받는다면 가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미안한 것은 풀면 된다

꼭 얼굴을 보여줘야겠다 싶으면 명절 피해서 다녀오면 된다. 평소에 전화를 자주 드리는 것도 좋다. 평소에 연락 한번 없다가 명절에 한번 내려오라는데도 안간다고 하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이다. 하지만 명절이 아니라도 방문하고, 평소에 전화도 자주 오던 사람이 마침 명절에 일이 있어 못오겠다 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으려니 이해하기 마련이다. 


가족의 애정과 공동체의 유대를 저해하는 악랄한 방법이라고 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것을 명절을 통해서 강화하거나 유지해야 할 필요는 없다. 명절에 가족이 모이는 것은 모두 행복하자고 하는 일이다. 모두의 행복이란 일정 수준의 개인 행복들의 집합이지 모두가 공통으로 갖는 행복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가족이 다 모였다고 모두 똑같은 수준의 행복을 갖지 않을 수도 있는 얘기다.


명절이 가진 '행복한 우리 가족'이라는 개념의 전체주의적인 요소가 가족 중에 어떤 이를 행복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면 개인의 행복을 우선해서 달성하는 것도 해볼만한 일이 아닐까 싶다.

300x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