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현오석 부총리 "어리석은 국민론", 책임지지 않는 공직자의 자화상

김성열 2014. 1. 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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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태 덕분에 2014년 벽두가 소란스럽기 짝이 없다. 여기에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빈정거리는 듯한 대사를 한방 날림으로써 더욱 다이내믹한 분위기 조성에 성공(?) 했다.


친절한 오석씨

그 내용인즉, 22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마친 뒤에 기자들이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의 책임 문제를 묻자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지고 걱정만 하는데, 현명한 사람은 이를 계길 이런 일이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일갈한 것이다. 이걸로는 성이 차질 않았는지 "금융 소비자도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에서부터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다 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았냐"며 책임 소재마저 확실하게 해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국민들 뿐만 아니라 여야정치권에서도 망언이라며 비난이 들끓자 앞서 한 말의 속뜻을 다시한번 친절하게 풀이해주셨다. "현재 금융소비자의 96%가 정보제공 동의서를 잘 파악하지 않는 관행을 지적한 것으로, 금융소비자도 앞으로 거래 시 좀 더 신중하자는 취지에서 말한 것"이라고 말이다. 정말 친절하신 분이다. 



대인배인가 어리석은 자인가

아쉽게도 현오석 부총리가 미처 생각하지 않은 것이 있다. 첫째는 정보제공 동의를 하지 않으면 금융거래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의서의 내용과 관계 없이 동의 항목의 체크 박스에 클릭하지 않으면, 네모 칸에 V자를 그리지 않으면 금융거래를 할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시스템이다. 이 관행은 소비자가 만든 것이 아닌데 소비자에게 지적질 하는 것은 좀 섭섭하다. 아마 현오석 부총리는 모든 경제권을 사모님 앞으로 위임한 착한 남편이어서 잘 몰랐던게 아닌가 싶다.


두번째는 정보제공에 동의를 한 것이 정보 유출에 동의를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보 유출에 대해 소비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정보 유출 동의서를 따로 만들어 동의를 하도록 하거나 정보제공 동의서에 "귀하가 제공해주신 개인정보는 당사와 귀하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 없이 유출될 수도 있으며, 그 책임은 당사와 기획재정부, 경제부총리에 있지 않습니다. 개인정보 유출의 책임은 당사를 믿고 맡기신 고객 니꺼란 말임" 정도의 항목을 미리 넣었으면 되는 일이다. 시스템이 좀 부실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래저래 현오석 부총리의 "어리석은 국민론"과 그에 대한 친절한 해명을 봤을 때 그는 성난 파도 같은 비난과 욕설을 감래하면서까지 개인으로서 할 말을 다하는 대단한 멘탈의 소유자거나 앞뒤와 위아래를 못가리는 어리석은 자 둘 중에 하나다.


공직자의 자격

더 서글픈 것은 현오석 부총리의 발언에서 현재 대한민국 (특히 고위) 공직자의 전형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막스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에게는 신념윤리보다 책임윤리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정부를 "백성과 주권자 사이의 상호 연락을 위해서 설치되어, 법률의 집행과 시민의 정치적 자유의 유지를 임무로 하는 하나의 중개단체"라고 했다. 루소의 말에서 '임무'는 해야 할 일이며 이는 곧 책임을 말한다. 정치를 하는 정치가는 법률을 제대로 집행하고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며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현오석 부총리의 어리석은 국민론은 정치가로서의 책임에서 떠나 있는 말이다. "나는 모르겠소~"라며 떠난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책임을 국민에게 대놓고 양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바탕이 된 사상의 위험성이 느껴진다. 게다가 이런 책임감이 결여된 부총리를 지명한 대통령의 성향 역시 책임보다는 신념에만 관심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급 공직자의 성향이 대부분 이러하진 않을까라는 염려가 앞선다.


유유상종(類類相從), 초록동색(草綠同色),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말이 여간 께름칙한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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