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나른한 오후 - 사람은 원래 고독하다

김성열 2014. 1. 2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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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노영심이 진행하던 TV 음악 프로그램에 김광석이 나온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김광석이 부른 노래들 중에 나른한 오후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그 노래의 모티브가 된 이야기를 김광석이 해주었다.


손발 까딱하기 싫은 나른한 오후에 방에 드러누워 있었더니 파리 한마리가 날다가 왼쪽 볼에 앉았단다. 손발 까딱하기 싫어서 입을 빼뚜름하게 해서 훅! 하고 바람을 불어서 쫓았단다. 

이번에는 그 파리가 오른쪽 볼에 앉더란다. 손발 까딱하기 싫어서 입을 또 빼뚜름하게 하고서는 훅! 하고 바람을 불어서 쫓았단다. 

이번에는 파리가 코 밑에 앉더란다. 손발 까딱하기 싫어서 아랫입술을 내밀어 훅! 하고 바람을 불었더니 파리가 코구멍 안으로 쑥 들어왔단다. 손발 까딱하기 싫더란다. 그래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크읍~ 캬악 퉤~! 했단다.


기억에는 노영심이 김광석에게 해줬던 얘기라고 한다. TV 보다가 킬킬 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가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무척이나 재밌어 한다.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듣고 만든 만든 노래가 김광석 3집의 4번째 트랙에 있는 '나른한 오후'다. 모티브가 된 얘기는 킬킬거림을 자아내지만 정작 노래는 서글프다. 노래가 만들어진 바탕 이야기를 알고 있는터라 이 서글픔이 온당한건가를 의심한 적도 있다.


아참 하늘이 곱다 싶어 나선 길

사람들은 그저 무감히 스쳐가도 또 다가오고

혼자 걷는 이길이 반갑게 느껴질 무렵

혼자남은 이유로 불안해하는 난

어디 알만한 사람없을까 하고

만난지 십분도 안되 벌써 싫증을 느끼고

아참 바람이 좋다 싶어 나선 길에

아참 햇볕이 좋다 싶어 나선 길에

사람으로 외롭고 사람으로 피곤해하는 난

졸리운 오후 나른한 오후

물끄러미 서서 바라본 하늘

                            - 나른한 오후 中


사람은 고독하다. 혼자 있어도 고독하고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고독하다. 사람은 사람 때문에 고독하다. 그 고독을 잊기 위해서 집중하고 몰입한다. 연애에 집중하고, 책에 집중하고, TV에 집중하고, 애완견에 집중하고, 일에 집중하고, 술에 집중한다. 그러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또 고독해지고, 다시 무언가를 찾아서 또 집중한다. 그러다 그러다 집중할 것이 없거나 집중하는 것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문을 잠그고 고독 안으로 웅크리고 들어간다.


'나른한 오후'에는 고독을 이겨내는 방법이나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가 들어있지 않다. 그저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다는 얘기를 한다. 사람은 사람 때문에 고독하다. 사람이 없어서 고독하니 사람을 찾는다. 하지만 사람 곁에서도 고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 때문에 고독하지만 사람은 그 고독을 벗어나는 방법이 아닌 것이다.


김광석의 감성은 이러한 고독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고독의 즐거움을 만끽한 것은 아닐 것이다. 고독 안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사람을 생각하고, 세상에 대해 사색했을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가 서글픈 것은 그것들이 김광석의 고독에서 잉태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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