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죽음의 공포를 자극하는 의료마케팅

김성열 2014. 1. 2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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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눈만 뜨면 무언가를 갖추라는 메시지가 즐비하다. 눈을 감아서 피하려해도 귀까지 틀어막지 않는 이상 소용없다는 것은 금방 알게된다. 마케팅은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이나 과정이 아니다. 단지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착각에 빠지도록 한다. 때로는 목적 달성을 위해 공포와 두려움을 이용하기도 한다.


죽음의 공포를 자극하는 마케팅

인간의 공포와 두려움 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다. 죽음의 공포에서 (얼마간이라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의료인데, 역설적이게도 의료분야의 마케팅은 그 죽음의 공포를 적극적으로 자극한다. 눈에 보이는 명확한 외상이나 의사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경험에서도 뻔한 경우가 아니라면 단 시간 내에 100% 확실한 진단을 받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의 의사는 병의 원인에 대해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기 마련이다. 그 덕분에 환자는 간단한 질환일 수도, 중증 질환으로 발전할 수도, 이미 중증 질환의 단계에 와 있을 수도 있다는 불확실함 때문에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이 공포를 제거하기 위해  복잡하고 값비싼 검사와 진료를 선택한다. 게다가 병이 위중할수록, 그 증상과 원인이 잘 드러나지 않을수록 결정권과 통제권은 의사와 병원에 더 많이 쏠린다. 환자는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이 아무것도 아니든 내일 모레 죽든 간에 답이 나와야 공포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병원과 의사에게 기댈 수 밖에 없다. 


이유가 무엇이든 환자는 루저

이것은 현대의학의 불확실성이 원인일 수도, 의사와 환자 사이의 정보불균형의 문제일 수도 있다. 심한 경우 의사 개인이나 병원의 타산적인 면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뭐가 됐든 마케팅 측면에서 환자가 불리한 것에는 변함이 없다. 모든 병원과 모든 의사들이 그렇지 않다라는 것은 맞는 말이다. 존경할만한 의사 선생님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안다. 하지만 좋은 부분만으로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은 썩 내키는 일이 아니다.


그나마 현대의학의 불확실성이나 정보불균형 문제가 대부분이라면 이해가 갈 법도 하다. 의사도 불완전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고 몰려드는 환자들마다 붙들고 의학강의를 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갑상선암 진단률이 10년 사이에 9배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통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고리 원전 2호기가 폭발해 방사선이 터져나왔을리는 없다. 서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17~19세 사이의 청소년의 포경수술 비율이 70%를 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설마하니 의사들 중에 유대인이 많아서는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감기는 어떤가. 요즘이야 감기에 주사를 처방하는 경우는 적지만 여전히 형형색색의 알약들을 사나흘씩 챙겨먹어야 한다. 십전대보탕도 아닌데 말이다. 미국, 영국, 독일의 어느 병원에서도 감기약을 처방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EBS 다큐멘터리(EBS 다큐프라임 - 감기, 2008년 6월 방영)는 어느 세상 얘기인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병의원 1회당 처방 약품목수가 4.13개로 호주, 독일, 미국, 일본, 이탈리아 등에 비해 2배 이상 높다는 사실(2007년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이 국회에 제공한 자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알아도 속수무책

이쯤 되면 히포크라테스가 의사였는지 마케터였는지 헷갈린다. 하지만 아무리 뭐라 해봤자 나 역시 환자의 상황이 되면 속수무책이긴 마찬가지다. 의사나 환자나 누구도 명확히 알지 못하며(불확실성), 의사가 아는만큼 환자가 알지 못하기 일쑤이고(정보의 불균형, 사실 알게끔 잘 얘기하지도 않는다. PC 수리기사에게 PC를 맡긴 옆집 아주머니의 기분이랄까?), 의사가 이해타산을 위해 행동한다 해도 심증만 있지 물증은 없다. 의료분야에 종사하는 마케터의 입장이라면 이만한 꽃놀이패도 없을 것이다.


이쯤 되면 차라리 프로이트가 말한 죽음의 충동(타나토스)를 극대화해서 자기 파괴를 선택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나올 때부터 등에 짊어진 죽음의 공포 때문에 더욱 간절해지는 자기보존의 충동을 거부하긴 어렵다. 의사와 병원은 그것을 환자보다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누구나 늙으면 죽는다는 것을 안다. 그저 노쇠함으로 인해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고통 없이) 죽는 것이야말로 대부분의 사람이 원하는 죽음이다. 하지만 중한 병이 들어서 죽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두려운 일이다. 자신의 죽음을 죽는 순간까지 인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지했을 때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극대화된다. 현대의 의료마케팅은 평범하지 않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대화하는 공포마케팅의 면모를 거리낌 없이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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