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읽고 생각하기

톨스토이 단편선 1, 2 (L. N. 톨스토이 지음, 권희정/김은경 옮김, 인디북, 2006)

김성열 2014. 1. 1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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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 시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순간을 행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순간이 살아있는 동안 오래되길, 계속되길 빌었을 것이다. 무엇이 행복인지 고민하고 정의하려 애를 썼을 것이고 때로는 진정으로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른 채 세상이 말하는 행복을 위해 살기도 했을 것이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민화를 바탕으로 한 작은 이야기들을 통해 행복을 이야기 한다. 비록 종교적 색채가 썩 묻어나지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행복을 말이다. 톨스토이도 세상이 말하는 행복을 들었을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의 끝에 행복은 무엇을 갖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행복은 세상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의 행복이 무엇인지는 나만이 안다. 그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나 추구하는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행복이 정해지면 그 행복은 나의 신념이 되고, 그 신념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필요에 의해서 알게 될 거야. 너희가 주인이고, 따라서 너희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게다." - 두 노인 中


행복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면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행복을 정의한 타인의 뜻에 기댈 수 밖에 없다. 행복의 주인이 내가 될 때, 내가 하는 어떤 일이든 자연스럽게 나의 행복을 위한 실천 방법이 된다. 나의 신념을 위한 행위를 타인에게 의존한다면 이미 나의 신념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말하는 행복, 자본주의가 장려하는 물질의 소유라는 행복을 위해 바둥거린다. 그것이 행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은 전혀 없이 타자(他者)의 욕망을 행복이라고 여기며 열심히 노력한다. 그것이 행복이 아니라 욕망이며, 더구나 나의 행복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고 말이다.


톨스토이가 말하는 행복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것일 수는 없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행복이 아니라고 했던 것 중에 하나는 여전히 유효하다. 살았을 때 가졌던 행복은 내가 죽어서 땅에 묻혀도 사라지지 않겠지만, 내가 갖었던 것은 내가 땅에 묻히는 순간 나에게서 사라져버린다는 것 말이다. 


바흠의 하인은 가래를 집어 들고 그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무덤을 팠다. 그리고 그를 묻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6피트인 그가 묻힌 공간이 그에게 필요한 땅의 전부였다. -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中


나는 넓은 땅의 주인이 되고픈 것인지, 내 행복의 주인이 되고픈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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