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생각을 주는 말과 글

어째서, 왜, 그런 의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이지

김성열 2013. 12. 2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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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라든지, 왜 라든지 그런 의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이지.

- 나츠하라 타케시 [검은 사기] 中


어째서, 왜라는 질문은 세상만사의 이치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이다. 또, 세상이 왜 이런지,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어째서 이렇게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면 삶이 세상 안에 있음을, 세상과 관련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나에게 하기 시작하면 내 삶의 이유를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답을 찾을 수 있고 없고를 떠나 답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시작점이다.


나는 살아갈 날이 아마 반쯤 남은 것 같다. 그런 나이라는 얘기다. 요즘 들어 내 삶의 이유에 대한 궁금함이 커지고 그에 따른 생각과 고민이 깊어진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지만 그만큼 답을 찾고 싶은 욕심과 기대도 커간다. 그래서 고민하고 생각한다. 생각 없이 살 때는 몰랐던 머리 아픔과 답답함의 연속이지만 이상하게시리 문제에 더 다가가고 싶어진다. 내 삶의 이유를 보고 싶은 것이다.


문제를 푸는 첫번째 단계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안을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 첫번째 단계다. 아마 나는 삶의 이유를 문제로 인식하는 첫단계에 있는 듯 하다. 문제에 대한 인식을 건너뛰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삶의 이유를 문제로 보기 이전에 삶의 이유가 나에게는 문제라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그것이 '나의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이 없이 문제에 접근한다면 그것은 나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나에게 있어 삶의 이유가 문제라는 것을 겨우 인식한 지금은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저 왜 사는지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의 목표가 명확하단 얘기라는 정도만 어림 짐작하고 있는 형편이다. 목표가 명확하다면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행복할 것이라는, 목표도 없이 매 시간을 시계바늘에 매달려 맴돌고 있는 것을 행복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정도가 전부다.


지금으로서는 삶의 이유에 대한 나의 질문이 결국 내 삶의 목표라는 질문으로 매듭지어질 것 같은 옅은 느낌만 든다. 하지만 내가 던진 삶의 이유라는 질문의 제대로 된 모습을 아직 잘 모르기에 삶의 목표가 갖는 이유와 가치에 대한 고민은 아직 때가 아니다. 더구나 삶의 이유라는 질문의 제대로된 모습이 삶의 목표와는 거리가 멀 수도 있으리라.


여전한 막막함 덕분에, 이제 겨우 문제를 인식한 정도인 덕분에 문제의 제 모습을 알 수도 없거니와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문제가 어떤 모습이든 그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참 행복한 인생일 것 같다는 기대감이 나를 설레게 한다. 이렇게 나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 해답이 없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하지만 은근히 설레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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