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일베의 공격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김성열 2013. 12. 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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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베스트저장소, 속칭 일베라는 사이트는 더이상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다. *일베인들은 자신들을 애국보수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베는 특정 지역/지역민에 대한 비하, 소위 진보라고 불리는 집단이나 인물에 대한 악성 조롱, 여성에 대한 적개심 따위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내가 일베를 안지는 2년 정도 되었다. *일밍아웃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내가 일베에 나의 정치적 주관이나 이념을 싸질러 놨다면(일베에는 '써놓은 글'이 별로 없다. '싸질러 놓은 글'이 대부분이다) *씹선비*좆선비라는 소리를 분명 들었을 것이고, 걔중에 어떤 이들은 나를 *민주화시켰을지도 모른다.


그저 나의 오지랖에서 기인하는 호기심이 나로 하여금 일베를 들락거리게 했고, 그러다보니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다. 과연 사회적 지탄에 가까운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들에게 혐오에 가까운 행동들을 일삼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하는 것 말이다.


열등감 - 좌절 - 피해의식 - 공격성

일베의 특징은 서슬퍼런 공격성이다. 그들은 정공법이 아닌, 비열하고 악랄한 공격을 구사한다. 상대를 죽이기 위해 발톱과 이를 드러내고 털을 치켜 세운 들짐승 같은 느낌의 룰이 없는 공격성이다. 공격성에 대한 관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일베의 경우 심리학자 닐 밀러(Neal Elgar Miller)의 좌절과 공격성(Frustration and aggression) 이론이 적절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좌절에 대한 반응으로 공격성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베인들의 좌절은 어떤 것일까? 일베를 보면 직업이나 학력, 재력 등을 인증(증명)하는 경우를 간간히 볼 수 있다. 일반인과 다름 없거나 일반인들보다 더 많은 부와 학력을 갖춘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인데,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런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런 인증 행위가 이뤄지는 것이다. 일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그런 과시용 인증을 한다면 잘난척 한다고 '민주화' 당하기 쉽상이겠지만, 일베에는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런 인증을 통해 일베는 일베인들의 신분상의 평균치를 상승시키고, 그렇게 높아진 위상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이나 주장에 대해 보편성을 확보하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게이(일베인들은 서로를 이렇게도 부르기도 한다)들은 이런 부와 학벌, 좋은 직업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자신들의 글을 통해 보여준다. (심지어는 얼마나 가난한지 인증하는 글을 올리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이 일베의 공격성을 출산한 좌절의 근원이다.


남보다 좋은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고(가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많이 배운 것도 아니고(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런 배경 덕에 사람들에게 무시 당한다고, 그런 배경 덕에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을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열등감을 갖게 되고 이어서 좌절한다. 그리고 그 열등감과 좌절은 피해의식을 낳고, 그것은 룰이 없는 야생의 공격성으로 표현된다.


나는 피해자다

소위 배웠다 하는 놈들은 진보니 뭐니 해가면서 떠든다. 그런 놈들은 대부분 직업도 안정적이고, 그에 따라 수입도 괜찮을 것이다. 그런 배경으로 여자를 사귀고 결혼을 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뭣도 없는 나에게는 그런 소박한 행복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진보라고 외치는 놈들은 대체 나를 위해서 뭘 해주는가? 결국 나의 것을 빼앗은 것 아닌가? 빼앗진 않았더라도 너무 많이 가져간 것 아닌가?


잘난 여자들은 가진 놈들에게만 관심 있다. 기본적인 이성에 대한 애정욕구를 발산할 기회를 빼앗긴 것도 부족해, 그 대상인 여성마저도 나를 업신여시고 무시하는 것 같다. 나는 더 좋은 학벌과 더 나은 직업을 가진 사내들 덕에 여자들의 눈 안에 들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다. 이것은 여자들이 돈으로 남자를 저울질 하기 때문 아닌가? 도대체 여자들이 어떤 권한이 있기에, 그 권한은 어디서 왔기에 사람을 이런식으로 취급하는가?


표현의 방식이 문제

일베의 공격 대상은 옳고 그름이나 사상의 다름 따위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을 애국보수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보수처럼 행동하지도 않는다. 그저 애국이라는, 보수라는 찢어진 가면을 쓰고 자신의 열등감을 유발하는 대상에 대해 적나라한 공격성을 표현할 뿐이다. 


일베가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의견이 다르거나 사상과 관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할 권리를 나는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그들에게 있음을 인정한다. 그 권리를 인정해야 나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도 인정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의견의 표현 정도가 지나치거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면 사회적 규범으로 처리하면 그만이다. 다만 그 공격성의 근원이 결국은 자본주의의 부작용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 치유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못내 속이 아릴 뿐이다.


*용어 설명

* 일밍아웃 - 일베 사용자인 것을 밝히는 것, 커밍아웃의 언어유희.

* 씹선비, 좆선비 - 양식 있고 교양있는 척, 깨끗한 척 하는 재수없는 인간. 좆선비는 일베의 적대 커뮤니티의 사용자를 지칭할 때 많이 사용

* 민주화 - 게시글에 대한 반대/비추천의 의미. 실상 일베에서 온갖 나쁜 의미는 다 민주화로 일컬어짐.

* 일베인 - 일베 사용자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 하지만 아쉽게도 현실에서는 일베충이라고 더 많이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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