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천명하며 박근혜 정부에 등을 돌렸다. 치사하고 비열하다는 소리를 피하기는 어렵다. 대통령 선거를 할 때 새누리당이 증세 없는 복지 공약에 딴지를 건 적이 있던가? 증세 없는 복지를 공약으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을 열심히 밀어서 대통령 자리에 앉혔다. 그 대통령이 인기가 떨어지고 공약의 실현성 때문에 욕을 먹으니 이제와서 그런 공약으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한다.
이제라도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고 국민 앞에 반성하는, '개과천선'의 태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속내를 그렇게 담백하고 순수하게 보기에는 뭔가 께름칙하다. 아무래도 인기 없는 정부와 결별하여 일단은 자기들만이라도 살고 보자는 속셈이 짙어 보인다.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해법에서 그 속셈이 순백의 자기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미 '증세 없는'이라는 전제 아래에서는 복지정책을 제대로 펼 수는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나름대로 실행방안을 고민했겠지만 결국 '증세 없는 복지'가 아니라 '복지 없는 증세'만 한 꼴이라 더 이상 '증세 없는 복지'라는 슬로건 자체가 먹히지 않는다. 세수가 부족해서 복지정책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뻔한 상황에서도 대통령은 여전히 증세 없는 복지를 할 수 있다는, 골프를 활성화 하자는 딴소리나 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이 뭔지도 모르는 정부다.
여당이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여당은 벌써부터 무상급식, 무상보육의 재편을 얘기한다. 돈이 없으니 복지를 축소하자는 얘기다. "증세가 없으면 복지를 제대로 못하는데 증세는 국민들이 싫어하니 어렵다. 그렇다면 복지는 축소할 수 밖에 없다"는 명쾌한 논리다.
언뜻 보면 여당이 옳은 것도 같다. 적어도 증세와 복지사이의 상관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느냐라는 측면에서 새누리당이 정부보다 현실적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호랑이 뒷구멍을 빠져나오는 기름 강아지처럼 핵심을 교묘히 비켜간다. '증세 없는 복지'에서 핵심은 '복지'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증세'를 논의의 중심으로 삼는다. 복지를 세금의 결과물로 전락시킨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운동하지 않고도 건강해질 수 있다'라고 떠들다가 오히려 건강이 악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원래 그 슬로건을 떠받들던 사람들이 '운동하지 않고 건강해지는 것은 구라'라며 지지를 철회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운동하는 건 귀찮으니 조금 허약하게 살자." 원래 슬로건의 중심은 '건강'인데 '운동'으로 그 중심을 슬쩍 옮긴 것이다. 지금 새누리당이 그렇게 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입장이 증세를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일 마지막에 할 일이라고 한다. 여전히 복지를 논의의 중심에 두지 않고 있다. 복지와 증세만을 놓고 보면 증세는 복지를 위한 수단이다. 기업 법인세 조정, 임대소득 및 재산양도 등에 대한 세금 부과 같은 수단이 뻔히 있는데도 그런 것들을 마지막 수단으로 삼자고 하는 것은 정상적인 논리가 아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지는 알 수 없으며 알고 싶지도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상적인 논의의 프레임이다. 증세가 아니라 복지가 중심이 되는 프레임 말이다. 논점을 흐리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구사하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정략을 꾸미는 일과 다름 없다. 정략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새누리당의 프레임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복지국가 되는 것을 원한다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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