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출근길에 버스에서 내리다 인도에 발을 딛지 못하고 허공답보를 시전했다. 30센티미터 쯤 되는 인도와 차도의 높이 차이는 예상하지 못한 헛다리질 덕분에 그 이상으로 느껴졌다. 인도에 쳐박힌 무릎에서 흐르는 피가 어린아이 주먹만하게 난 정장바지의 구멍으로 잘도 보였다. 눈을 뜨고 있었기에 마땅히 인도의 턱이 각막에 맺혔을게다. 하지만 머리는 눈의 감각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허공에 발을 딛기 직전까지 나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데카르트 선생의 말을 빌면 이렇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자빠진다(Cogito ergo Japparing)."
오늘 아침 출근길에 이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직원을 우연히 만났다. 넉넉 잡아 3년여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서로 바쁜 출근길이라 짧은 인사만으로 반가움을 달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50여미터 정도 걷는 동안 그 직원과의 함께 했던 기억들을 꺼내고 곱씹었다. 생각이 끝날 즈음, 매일 아침 그 거리에서 맡았던 (지독한) 음식물 쓰레기의 냄새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을 새삼 알았다. 뒤돌아 보니 여느날처럼 음식물 쓰레기봉투에서는 구정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골몰한 생각 덕분에 냄새가 머리에 이르지 못했음이다. 다시 한번 데카르트 선생의 말을 빌면 이렇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무슨 냄새?(Cogito ergo... smell?)."
깊은 생각에 빠지면 누가 적당히 건드려서는 모른다. 소음이 있어도 시끄럽지 않고,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한다. 누구나 그렇다. 깊은 생각은 감각을 마비시킨다.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고민이든 반추든 간에 깊은 생각에 빠지면 감각이 둔해진다. 이와 반대로 감각이 예민해지는 것은 몸이 긴장 상태에 있을 때다. 긴장해서 감각에 집중하면 생각은 좁고 얕아진다. 긴장하면 감각이 곤두서고, 생각이 깊어지면 몸의 긴장은 풀어진다.
생각에 집중하면 몸의 긴장이 풀리고 나의 의지와 관련 없이 받아들이던 감각을 무시할 수 있다. 긴장과 감각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긴장의 해제와 감각의 상실. 술을 먹고 취한 상태와 비슷한 면이 없지 않다. 나를 자빠뜨린 것도, 악취로부터 해탈시킨 것도 생각이다. 긴장과 예민을 전투복처럼 걸치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이만한 해방감을 맛본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게다가 술은 돈이 들고 건강을 상하게 할 수도 있지만, 생각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호아퀸 로렌테의 책 제목처럼 '생각은 공짜'가 아니던가.
한동안 책을 읽지도, 글을 쓰지도 않았다. 나태해진 것이 아닐까라는 염려가 생겼다. 그래도 생각하는 시간은 많았으니 다행이다. 이런 상황에 데카르트 선생의 심오한 한마디를 얄팍하게 빌어 쓰는 것이 죄송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또 빌어서 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생각 때문에 머리가 아픈 것은 존재의 댓가다. 생각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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