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의원 컷오프 사태
20대 총선거를 한 달 여 앞둔 시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정청래 의원이 공천탈락(컷오프) 소식이 정가, 정확히 말하면 더민주를 흔들고 있다. 자기 자리 보존에만 급급한 그저 그런 국회의원이라면 사람들이 별반 관심을 두지 않을테지만 정청래 의원은 다르다. 얼마전까지 더민주의 최고위원이었고 새정치민주연합 국정감사 우수의원,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뽑힌 역량 있는 국회의원이다.
커뮤니케이션도 제법이다. 여러 팟캐스트 방송에 출현해 격의없이 대중들과 소통하려 애쓰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언행이 가볍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 단식 때 23일간 동반 단식을 하고 테러방지법을 저지(지연)하기 위한 필리버스터에서 11시간이 넘게 반대토론을 이어간 뚝심도 있다. 이름이 많이 알려진만큼 비판(비난)도 많이 받지만 그만큼 호감도 얻고 있다. 이런 사람을 건드려놨으니 더민주에 비판의 화살이 날아드는 건 당연하다.
정청래 의원의 지지자들이 (그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더라도) 더민주 수뇌부의 결정에 반발하는 것은 공천탈락의 이유가 시덥지 않아서다. 시덥지 않은게 아니라 졸렬한 수준이다. 더민주 공천관리위원장인 홍창선의 말로는 그가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트럼프에 맞먹는 '막말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란다. 열혈 지지자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막말로 인해 반대쪽에서 낯을 찡그리는 (그로 인해 더민주 쪽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하는) 빌미를 만들어주는 것은 고쳐야 한단다.
싸가지에 대한 우려
홍창선이라는 사람도 더민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니 악의는 없으리라 본다. 그래도 그의 답변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한번 짚어보자. 정말 정청래 의원이 '막말의 대명사'인가? 때에 따라 좀 쎄게 말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을 '막말'로 치부하기에는 좀 그렇다. '정청래=막말'이라는 등식은 종편이나 조중동에서 애먼 사람 하나 잡을 때나 써먹는 것이다.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등식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몇몇 거친 표현으로 그 사람을 통째로 재단하는 것도 위험하다. 트럼프의 입에서 나오는 (헛구역질 나는) 말들은 막돼먹은 그의 사상이 만든 결과물이다. 정청래 의원의 거친 표현들이 그의 성정과 사상의 결과물인가? 그건 아니다. 그가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만약 정청래 의원이 그의 언사만큼이나 과격하고 막돼먹은 성정을 가졌다면 당 최고위원, 가계부채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어떻게 올랐겠는가. 국회의원을 시켜서는 안될 정도로 막돼먹은 사람을 당에 몸담게 할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집권하고 있는 여당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정청래 의원의 막말(그들의 표현이다) 때문에 낯을 찡그릴 사람, 그러니까 더민주를 외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 늘어나는 것을 겁내는 것도 아리송한 일이다. 낯을 찡그리지 않는다고 해서 더민주를 지지해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냥 들어서 불편한 말은 덜 들어도 되는 것뿐이다. 지금 정청래 의원이 곱디곱게 말한다고 해서 무당층이나 새누리당 지지자가 '싸가지 있는' 더민주로 몰려들까? 있다한들 그게 몇이나 되겠는가. 오히려 정청래 의원을 내침으로써 더민주가 잃어야 하는 지지층이 더 많다. 사칙연산까지도 필요없다. 덧셈 뺄셈 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적의 전략에 놀아나는 더민주
한마디로 말해 정청래 의원이 공천탈락한 이유는 '싸가지가 없어서'다. '쟤는 실력은 괜찮은데 말하는 싸가지가 없어' 이거다. 더민주의 공천을 좌우하는 자들은 일을 잘해도 싸가지 없으면 안된다는 고풍스러운 개념을 들이민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진보는 싸가지가 없다'라는 프레임은 원래 보수쪽의 것이다. 보수쪽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거나 새로운 프레임을 창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우리는 싸가지가 없어서 2등인가 봐' 하고 있는 꼴이다. 적의 프레임에 놀아나는 것도 이 정도면 예술 수준이다.
만약 싸가지가 있어서 총선에 성공하고 그 기세로 대선에 성공할 수 있다면 싸가지를 장착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정치가 싸가지만으로 될 일인가? 그렇게 싸가지가 좋아서 정권을 잡아잡순 여당이 지금 나라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를 보면 답은 뻔하다. (게다가 여당은 선거 전에만 싸가지가 있다) 일단 정권이라도 잡고 보자는 전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싸가지만으로 정권을 잡지는 못한다. 진보가 내건 어젠더 자체가 반동적이고 전투적이기 때문에 싸가지를 갖추는 것은 한계가 있다. 지금은 뒤집어 엎어야 뭐가 될까 말까한 판국이다. 싸가지 있게 밥상 뒤집어 엎는게 가능하기나 한가. 뒤집어 엎는 자체가 싸가지 없는 일인데 말이다.
싸가지보다 정치적 책임을
정청래 의원의 공천탈락에서 자칭 (중도)진보라고 하는 더민주의 전략적 무능이 보인다. 상대의 전략 안에서 답을 찾는 짓은 유능한 사람에게서 볼 수 없는 일이다. 더민주는 지금 싸가지 타령을 할 때가 아니다. 싸가지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격의 없는 친근한 말이 될 수 있고 또다른 사람에게는 싸가지 쌈싸먹은 말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개인의 신념에 관련된 문제지 정치적 책임과는 무관하다. 막스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이미 백 년 전에 말했다. 정치가는 신념윤리가 아닌 책임윤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이다. 정치적 책임을 프레임으로 놓고 공세를 펼쳐도 시원찮은 마당에 개인의 신념에 지나지 않는 싸가지 타령을 하고 있으니 집권여당의 2중대라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혁할 때는 보수층의 반발을 동반할 수 밖에 없다. 변화와 개혁이 정치적 목적이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한다면 싸가지 없다는 소리는 피할 수 없다. 밥상 엎은 놈이 싸가지 있다는 소릴 어떻게 듣겠나. 싸가지 없다는 얘기 좀 들으면 어떤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누가 봐도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봉사활동을 한평생을 바치는게 낫다. 천사 같은 정치가는 없다. 막스베버가 정치란 정치적 책임을 위해 악마의 힘과 손잡을 수 있을 정도의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괜히 말한게 아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야 할 정도도 아닌, 싸가지 없다고 욕먹는 정도에 주눅들어서야 무슨 진보를 하겠는가. 자신들이 보수고 꼰대임을 만천하게 알리는 것 뿐이다. 싸가지 타령 하지 말자. 진보는 싸가지가 좀 없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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