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을이 없어야 갑이 없다

김성열 2015. 1. 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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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의 굴욕, 을의 비극

대한항공 전 임원 조현아씨의 땅콩리턴 사건이 터진지 후, 돈 많고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갑질'을 일삼던 부류에 대한 사람들의 눈길이 매섭다. 이미 지나간 재벌들의 일탈 행위들이 다시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일들이 뉴스거리가 된다. 어제도 한 건 터졌다. (백화점 모녀 갑질, 롯데백화점 알바)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가장 큰 잘못은 분별 없이 갑질을 해대던 사람들한테 있다. 그들의 행동은 도가 지나친 정도가 아니라 일찌감치 도를 벗어났다. 그들의 행동은 거의 형사 범죄에 가깝거나 형사범죄에 해당한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으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함부로 굴어도 된다는 의식과 태도가 불러온 갑의 굴욕이요 을의 비극이다. 그러면 '을'이라 불리는 소시민인 우리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을까? 가진 놈들, 높은 놈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세상이니 소시민인 나는 책임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갑 혼자서 만든 세상일까?

'갑'들의 무례하고 방종한 의식과 태도가 통하는 분위기를 (원하고) 설계한 것은 갑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사회적으로 고착화시키는 것은 갑들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누군가 그들의 의식과 태도를 인정해야만 갑이 원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갑 없는 을도 없지만 을 없는 갑도 없다. 갑은 을이 있어야 비로소 갑이 된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단단하게 구조화시키는 데는 '을'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물타기'가 아니다. 돌이켜 보자. 환경 미화원을 보면서 어린 자식에게 '열심히 공부 안하면 저렇게 된다'고 한 엄마는 누구인가? 손님이라는 이유로 식당 종업원에게 반말을 찍찍 뱉던 그 아저씨는 누구인가? 갑이랍시고 다리 꼬고 앉아서 영업 담당자를 내려보며 쪼개던 구매 담당자는 누구인가? 근사하게 걸쳐 입지 않고 명품 코너를 들어오는 손님을 깔보고 비웃던 점원은 누구인가? 직급이 높다는 이유로 부하직원에게 거침 없이 막말을 날리던 상사는 누구인가? 대기업 입사 후에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서 중소기업 다니는 친구 앞에서 거들먹거리던 동창생은 누구인가? 이게 다 우리 소시민들의 모습 아닌가?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빌면 "나는 무엇을 선호하는가? 또는 나의 성격과 기질에 적합한 것은 무엇인가? 또는 무엇이 나의 내면에 있는 가장 선하며 가장 고귀한 자질을 공정하게 활동하게 하여, 그것이 성장하고 번성하게 해주는가?"를 묻지 않고 "나의 분수에 적합한 것은 무엇인가? 나와 같은 지위와 재정적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무엇을 하는가? 또는 나보다 우월한 지위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주로 무엇을 하는가?"만 묻고 있는게 지금의 우리다.


한국 을의 좌표

우리는 경우 없는 조현아를, 포악한 재벌을, 몰지각한 재벌의 자식을, 무례한 백화점 VIP 고객을 비판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이 원하는 틀 안에 있길 원한다. 정도만 다를 뿐이지 지위와 소득, 학벌, 직업, 가계 따위의 속물적인 요소로 사람의 격을 구분한 것은 갑들과 마찬가지다. 가진 것이 적다고,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모멸과 수치를 당할 때 우리는 어떠했는가? 자신의 상처받은 존엄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삭히는 대신 나도 더 많이 갖고 더 높은 지위에 올라 저들처럼 당당해지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런 분위기의 바닥을 깐 것은 돈 많고 지위가 높은 갑이지만 그 바닥을 다진 것은 을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무례한 갑의 횡포에 대해 항거하고 분노하는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항거와 분노 역시 갑과 을이라는 틀 안에 머문다는 점은 무척 아쉽다.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 김규항씨가 경향신문에 쓴 컬럼에서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조현아에 대한 분노는 '나는 머슴이다. 그러나 머슴이라고 함부로 욕하진 마라'에 머문다. 그게 지금 더도 덜도 아닌 한국 을들의 좌표다." 


을이 없으면 갑도 없다

우리의 분노가 갑(이라고 자신을 포지셔닝한 자들)의 돼먹지 못한 태도와 행동에 그쳐서는 안된다. 돈과 지위, 권력에 의해 인간의 격이 구분되는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사회 분위기와 그 분위기가 뭉쳐서 만들어진 갑과 을의 시스템을 깨뜨리려 해야 한다. 갑을 깰 수 없으면 을에서 벗어나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타인을 나와 동등한 위치에 두고 인간과 인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처럼 살고 싶고 인간답게 대우 받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그렇다면 '사람답고'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에 반하는 의식과 태도에는 분노해야할 뿐만 아니라 없애려 노력해야 한다. 묵혀온 분노를 터뜨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분노의 에너지를 버릴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을이 아니라는 외침을 위해 써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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