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후회는 항상 늦다

김성열 2015. 1. 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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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곁에 겹겹이 쌓인 신문들을 내다버리며, 질끈 묶기에도 모자람이 없는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잘리는 걸 보며 올해도 다 갔구나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하고자 해서 한 것도 있고, 어쩌다 한 것도 있고, 하고자 했는데 못한 것도 있고, 어쩌다 보니 못하게 된 것도 있다. 이 맘 때면 늘 그렇다. 한 것을 챙겨 생각하면 기분 좋을 법도 하지만 못한 것이 먼저 생각나기 마련이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커보이는 손실 회피의 경향을 피하질 못해서인가 싶다.


한 해를 되새김질 하기 시작한 것이 몇 살 때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그 후로 연말이 되면 어김 없이 후회를 한다. 나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어 한 해를 뒤로 더듬지 않아봐야 소용이 없다. 나의 그런 의지와는 관계 없이 후회는 샘솟는다. 완벽한 1년을 살지 않은 한, 마음 먹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1년을 살지 않는 한 후회를 피하진 못한다. 후회는 인간의 운명이기라도 한건지...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돌아오는 길에, 후회를 미리 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톰 크루즈가 미래에 한번 갔다가 '이 길이 아닌가봐?' 하고는 다시 돌아오듯이 말이다. 후회가 별건가. "이게 아니었구나" 하는게 후회 아닌가. 미리 후회할 수 있다면 연예대상 시상식처럼 연말만 되면 돌아오는 괜한 자괴감과 헛된 다짐을 줄일 수 있을텐데 말이다.


허나 미래로 갈 수 없으니 후회를 미리 할 수는 없다. 이론은 그렇다. 혹시 미래에 가지 않고도 (어차피 못가지만) 후회를 할 수는 없을까? 일단 한 해 동안 이루고 싶은, 이뤄야할 목표와 계획을 잡는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후회를 하는 것이다. 마치 12월 마지막날인 것처럼 말이다. 안되는 것 안다. 상대성 이론이고 뭐고를 떠나서 없는 일에 후회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른 후회'라는 말은 형용 모순이다.


후회는 그림자 같다. 나는 빛을 향해 있고 그림자는 나의 앞에 서지 않는다. 항상 내가 새긴 발자국을 덮는다. 내가 돌아서면 그림자는 내 앞에 있겠지만 돌아선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사람에게 후회는 필요없다. 후회는 항상 나보다 늦다. 게다가 내가 완벽하지 않은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상 후회를 피할 방법도 없다. "후회 없는 삶"이 현실에서 가능한가? 어쩌면 그럴싸한 말을 또 하나의 강박으로 안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고 아둥바둥 대지 말자. 후회가 반성과 성찰의 실마리가 되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후회 한 줌 없는 삶을 강박처럼 여기면 후회는 변명과 자기기만의 수단으로 쓰일 뿐이다. 후회 좀 하면 어떠랴. 그것도 내 삶인데. 내가 한 일인데. 내가 사랑한 사람인데. 나의 결정이었는데. 나의 바람이었는데. 후회는 항상 늦다. 하지만 버릴 수 없는 내 삶의 한 부분이다. 그저 너무 늦지 않길 바라며 소중히 대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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