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주권을 시민에게 두는 정치 체제의 한가지다. 민주주의 체제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나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유를 보장 받는다. 거주/이전, 직업선택, 주거, 사생활, 통신, 양심, 종교, 집회/결사 같은 개인의 삶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의 자유를 헌법이 보장한다. 주권이 시민에게 있고 시민은 자유를 보장받으므로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정치 체제라고 볼 수 있다.
시민의 자유가 어떤 상황에서도 균일하게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의견이나 여론에 따라서, 혹은 국가라는 권력의 개입 정도에 따라서 개인의 자유가 제한될 수도 있다. 이번에 이뤄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도 권력의 개입하여 사상과 결사의 자유를 제한한 사례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빌자면 '자유는 사회가 개인에게 정당하게 행할 수 있는 권력의 본질과 한계에 따라서 그 범위가 결정'되는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가 확고할수록 시민의 자유는 단단해진다. 반대로 민주주의 체제가 허술하면 시민의 자유는 부실해진다. 뿐만 아니라 자유의 본질적인 의미도 바뀐다. 예전에 우리가 겪었던 독재나 군사정권, 어용정권 시절에서의 자유의 의미는 지금의 자유와는 다르다. 그 시절의 자유는 '정치적 지배자의 압제에 대한 방어'의 의미가 컸다. 방어가 공세로 연결되고 몇번의 패배와 승리를 반복하면서 지금의 민주주의 체제까지 왔다. 그리고 체제의 수준에 맞는 자유의 의미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번 통합진보당 해산은 권력이 개입하여 시민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의 국가 전복의 실현성이나 그들 발언의 진정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논의도 없이 공익에 대한 위협의 가정만으로 자유를 제한했다. 이는 사상과 결사의 자유 수준을 지금보다 더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정치 권력에 의해 시민의 자유가 후퇴한 것이다. 자유의 후퇴는 곧 민주주의의 후퇴다.
나는 통합진보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싫다고 해서 그들이 생각할 자유, 말할 자유를 누르거나 빼앗을 권리가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헌법 제1조에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다. 타인의 사상/결사의 자유를 제한할 권리가 나에게 없다. 그런데 있지도 않은 나의 권리를 대리해서 헌법재판소는 한 시민들의 사상과 결사의 자유를 제한했다. 이것이 정당한 권력의 행사인가?
헌법재판소가 공공의 이익을 염두했을 수도 있다.(그렇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민의 자유보다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종북의 위험, 과격한 사상의 위험을 더 우선해야 하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이 그 정도로 사상에 물들기 쉬운 철부지들이 모인 곳이었던가? 걱정은 고맙다만 그것과 시민의 자유는 별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다시한번 시민의 자유가 정치 권력에 대한 저항의 방패로 사용될 것이다.
모든 권력에는 저항이 따른다. 권력이 강해질수록 저항도 커진다. 자신들의 권력을 키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정치세력들은 (그 세력에 빌붙어 기생하는 세력들도)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한 기쁨은 전보다 더 큰 저항을 함께 몰고 온다는 것을 말이다. 눈엣가시 같던 반대자를 없앤 것이 기쁜가? 그렇다면 기뻐하라. 저항의 파도가 들이닥치기 전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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