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사주 일가가 조현아 상무만으로 성이 안찼는지 선수를 바꿔가며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조현아 상무의 행동거지가 이미 드러날대로 드러나서 더 쓸게 없는지 이제 여동생인 조현민 전무까지 타석에 들어선 모양새다. 그리고 호쾌한(?) 타격을 선보였다. 못해도 2루타 감이다. 대한항공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는 그녀가 대한항공 마케팅 부서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하나 보냈다는데 그 내용이 볼만하다.
우리 OO이나 제 밑에 있는 직원들에게 항상 제일 미안한 마음은. 아직도 미흡하고 부족한 조현민을 보여드려서에요.
그래도 2007 조현민 보다는 조금 더 전문적인 2014 조현민이지만 2014 조현민은 여전히 실수투성이네요.
이런 상황에서
약한 모습? 보이는게 맞나 생각이 들면서도
손해는 봐도 지금까지 전 진심이 항상 승부하는 것을 봤습니다.
누가봐도 전 아직 부족함이 많은. 과연 자격이 있냐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마케팅이란 이 중요한 부서를 맡은 이상 최선을 다 하고 싶었고 여기까지 왔어요.
그리고 전 이유없이 마케팅을 맡은 건 아닙니다.
매일 매주 매월 매년
어제의 실수 오늘의 실수
다시 반복 안하도록 이 꽉 깨물고 다짐하지만 다시 반성할 때도 많아요.
특히 우리처럼 큰 조직은 더욱 그렇죠.
더 유연한 조직문화 지금까지 회사의 잘못된 부분들은 한사람으로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임직원의 잘못입니다.
그래서 저부터 반성합니다.
기사에 올라온 메일 전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기승전결 따위는 바라지도 않지만 요점조차 잘 모르겠다. (그냥 잘 하자?) 대한항공이 처한 상황을 놓고 보면 '반성'이 핵심 키워드인 것 같다. 그런데 '모든 임직원의 잘못'이라는 말이 영 마뜩찮다. 지금 대한항공의 사주 일가가 왜 욕을 먹는지 생각하면 모든 임직원의 잘못은 분명 아니다. 이번 상황과 이번 상황을 통해 드러난 대한항공의 조직 분위기를 보면 직원은 엄연한 피해자다. 조현민 전무가 모를 지도 모르니까 설명하면, 대한항공 직원은 세 가지 차원에서 피해자다.
직원은 피해자다
첫째는 인간적 차원의 피해다. 사주(일가)로부터 능욕과 멸시를 받았다는 것, 모두가 그런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엄연한 피해 사실이다. 아무리 수직적인 위계질서에 있다고 해도 인간적인 모욕이나 능욕은 폭력이다. 형법에 모욕죄라는게 괜히 있는게 아니다. 폭력에 당한 것도 피해이고 폭력을 당할까봐 불안에 떠는 것도 엄연한 피해다. 얻어 맞고 불안에 떤 직원이 가해자일 수는 없다.
둘째는 노동자 차원의 피해다. (현실이야 시궁창이지만) 회사와 노동자는 평등한 관계다. 직원은 회사를 위해 일을 하고 회사는 업적에 맞게 보수를 지급하는게 기본이다. 근로계약서에 없는 책임을 근로자에게 지우면 근로계약 위반이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근로계약서를 쓸 때 사주일가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왕처럼 모신다고 되어있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주 일가가 뜨면 직원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난다고 한다. 이것은 근로계약에 없는 부당한 책임을 강요하는 것이다. 근로계약에는 없던 책임을 지우는 것은 노동력을 갈취하는 것과 다름 없다. 갈취당한 사람이 피해자인 것은 두 말하면 허리 아프다.
셋째는 대한항공 직원 차원의 피해다. 임원 한 명 때문에 대한항공이라는 회사 이미지가 박살났다. 외신에까지 오르내렸으니 그냥 박살이 아니라 X박살났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대한항공이 욕을 먹고 있다. 회사에 대한 비난과 그 회사의 직원에 대한 비난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회사 이미지가 나쁘게 바뀌면 직원들도 일정 정도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일은 직원들의 잘못이 아니다. 직원들이 비행기 돌리라고 떼창을 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나서서 잘못을 은폐하려들지도 않았다. 아무 잘못도 없이 회사가 욕먹으니까 따라서 욕먹는다면 피해를 입은 것이다.
위험한 물타기
모든 '임직원의 잘못'이라는 말은 잘못이다. 조현민 전무가 그걸 몰라서 그런 말을 했다면 대기업 전무 자리에 있을 자격을 스스로 의심해야 한다. 이런 간단한 상황도 파악 못하면 다른 건 안봐도 뻔하다. 그렇다면 굳이 '임직원의 잘못'이라는 도박에 가까운 말을 쓴 이유는 뭘까? 설마 임직원이 임원과 직원을 합한 말인지 몰라서 그랬을 리도 없으리라. 그러면 이유는 하나 밖에 없다. 물보다 진한 피의 개념이 앞선 '술에 물타기'다.
이 지점에서 조현민 전무가 마케팅 담당 임원이 되기에 자질이 부족하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마케터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메시지를 만들고 전달하는 것이다. 메시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잘 먹히는 메시지를 만들고 적절한 방법으로 잘 전달하는게 주된 임무다. 메일을 보면 메시지를 글이라는 형식으로 짜는 데는 약한 것 같다. 글 몇 줄 쓰는 데 저렇게 버벅거려서야 되겠나. 하기야 남 모를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실무에서는 굳이 직접 해야 하는 일도 아니니 굳이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다.
마케팅을 아는건가?
하지만 마케팅을 담당하는 임원이니까 메시지에 대한 감각은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메시지가 잘 먹힐지 파악하고 적절한 것을 뽑아낼 능력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밑에서 올아오는 보도자료든 광고 기획안이든 제대로 볼 수 있을테니까. 그런데 그것도 안되는 것 아닌가 싶다. 지금은 회사 모든 임직원의 책임으로 몰고 갈 타임이 아니라서다. 더구나 친언니가 원인이 된 일이다. 대충 물타기 하다가는 제 식구 감싸기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이 와중에 이런 메시지를 뽑은 것은 병아리 눈물 만큼의 도움도 안된다. 메시지에 민감해야 하는 사람이 상황에 걸맞는 메시지를 선별하지 못했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마케팅 담당자로서의 그녀의 자질을 의심하게 한다.
안다. 글 몇 줄을 두고 업무 자질을 운운하는 건 오버일 수 있다. 내 귀에는 무책임하고 염치 없는 말로 들리길래 왜 이런 소리를 하나 싶어 생각하다 보니 거기까지 갔다.(명의회손, 아니 명예훼손의 의도는 절대 없다.) 실제로는 자질과 능력이 차고 넘칠 수도 있으니 확정적인 표현은 삼가겠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한나만 말하련다. 잘못했을 때는 그냥 잘못했다고 하는게 제일 좋다. (광고는 몰라도) 사람과 소통할 때는 진심을 담은 메시지가 제일 잘 먹히는 법이다.
지금은 머리를 굴릴 때가 아니라 머리를 조아릴 때라는 것을 조현민 전무는 알아야 한다. 아무리 낙하산이라고 해도 한 회사의 임원이라면 그 정도는 알아야 한다. 반성은 그렇게 시작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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