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비행기를 후진, 정확하게 말하면 활주로로 가다가 방향을 되돌려서 다시 탑승 게이트로 '램프리턴'을 시켰다는 기사로 12월 두번째 월요일이 시끌벅적하다. 비행기에 문제가 있거나 해서가 아니라 기내 서비스를 제대로 하지 못한 승무원을 공항에 떨구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원래 승무원은 기장의 명령 없이는 내릴 수 없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조현진 부사장이 월권을 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후속 기사(대한항공 측의 해명)에는 기장 명령에 따라 승무원이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승무원의 하기(下機)가 적절한 절차를 거친 것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일반 승객이 땅콩 봉다리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저 승무원하고 비행을 하느니 하이재킹을 당하는게 낫겠어!!"라고 떠들어 봐야 램프리턴이나 승무원의 하기가 이루어졌을 리 없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비행 내내 수갑을 차야할지도 모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어떤 정신 상태(다른 말이 생각 안나서...)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냐는 것이다. 나는 단언컨데 조현아 씨의 주인의식이 이 일의 사상적 배경(씩이나?)이 된다고 생각한다. 조현아 씨의 아버지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자 대한항공의 대표이사 겸 회장이다. 대한항공은 아버지의 회사이며 조현아 씨 본인은 부사장 자리에 있다. 쉽게 말해 아버지와 딸이 회사의 주인인 것이다. 그러니 대한항공에 대한 조현아 씨의 충만한 주인의식은 당연하다. 대한항공이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회사도 아니고 한진그룹이 고생고생한 결과로 얻은 사업의 결과 아닌가? 그러니 조현아 씨의 입장에서는 주인으로서 애정과 애착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은 욕할 것이 없다. 나의 회사이니 더 열심히 해서 키우고, 좋은 이미지로 세상에 알리고, 내 자식처럼 애지중지 하려 드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많은 기업주나 오너 경영인들이 주인의식의 범위를 착각해서 주인의식으로 대하지 말아야 할 대상에게까지 주인 행세를 하려 든다는 것이다. 이번 일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조현아 씨는 대한항공이라는 회사 뿐만 아니라 승무원에게도 주인처럼 굴었다는 얘기다.
조현아 씨의 마인드를 풀어보면 이렇지 않을까 싶다. "내가 회사의 주인이고 (승무원) 너는 회사를 위해 일하니 내가 너의 주인이다. 따라서 내 마음에 안드는 너는 비행기에서 내려라. 기장 역시 회사를 위해 일하고 나는 너의 주인이다. 어서 너는 나의 의지 관철을 위해 관제소에 연락하고 후진 기어를 넣은 후 비행기를 다시 탑승 게이트에 도킹시켜라. 그리고 당장 저 승무원을 비행기에서 내리도록 하라."
매우 천박한 착각이다. 직원은 머슴이나 노예가 아니다. 직원은 회사에 노동을 제공하고 금전적인 보상을 받기로 계약한 사람이다. 직원과 회사의 그런 관계는 근로계약서에 정확하게 명시된다. 회장님, 사장님, 혹은 그들의 직계존속을 주인처럼 모신다는 내용을 근로계약서에 넣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계약서에 없는 권리를 누리려 하거나 계약서에 없는 의무와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것도 인간이 다른 인간을 소유하려는 권리 주장은 아주 질이 나쁜 축에 든다.
돈도 좋고 명예와 권력도 좋다. 그 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다. (나도 갖고 싶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대한 바람직한 생각과 개념을 잃게 되면 천박하고 비루해진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오로지 더 갖기 위해, 유지하기 위해, 써먹기 위해, 과시하기 위해 죽을 듯 살 듯 굴기만 할 일이 아니다.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권위를 갖는지, 그 권위의 정당성은 어디까지인지 고민하고 경계해야 한다. 그러면 존경할 수 없는 부자만큼 혐오스러운 사람도 없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작년에 대기업 임원이 대한항공 승무원을 라면 때문에 폭행한 사건을 두고 조현아 씨는 다음과 같은 말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고 한다. "승무원 폭행사건 현장에 있었던 승무원이 겪었을 당혹감과 수치심이 얼마나 컸을 지 안타깝다", "그러나 승무원들의 업무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와 위로를 받았다." 내가 볼 때는 라면이나 땅콩이나 별다르지 않다. 이제 승무원들의 업무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를 조현아 씨 자신의 이해 범주에 넣길 바란다. 자기네 부사장도 이해 못하고 위로하지 않는 승무원의 처지를 승객들에게 바라는 것은 너무 염치 없는 짓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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