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연애

'차라리 그 사람이 나았었어'라는 어리석은 생각

김성열 2014. 5. 12.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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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나 부부생활이 항상 핑크빛으로 물들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 대한 불만이 생길 때도 있고 의견이 충돌할 수도 있으며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상대가 싫어질 수도 있다. 그러다가 서로에게 가진 감정의 돌기가  부딪치게 되면 다툼이 생기고 그 다툼으로 인한 분노와 화는 별별 생각을 들게 한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거나, 이 참에 헤어져버리겠다거나, 앙갚음을 하겠다거나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그러다보면 마음 한켵에서 "이럴 바에야 예전 그 사람이 더 낫다"라는 아쉬움이 슬그머니 머리를 들기도 한다. (물론 예전에 만난 사람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다.)


'적어도 이번 일 같은 경우라면 예전 그 사람은 이렇게 나오진 않았을텐데'라거나 '예전 그 사람하고는 이런 일로는 부딪치지 않았는데' 따위의 가정을 앞세운 이 아쉬움은 지금의 상황을 더 비참하고 한탄스럽게 만든다. 이런 아쉬움이 만성적으로 마음속에 자리를 잡게 되면 예전의 사람과 지금의 사람을 비교하는 일도 잦아지고, 그럴수록 아쉬움이 커져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차라리 그 사람이 나았었어'는 어리석은 아쉬움이다. 어떤 사람을 연인으로, 배우자로 택한다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택하는 것이다. 반대로, 관계가 끝난 과거의 그 사람과는 미래는커녕 현재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과거의 그 사람을 현재나 미래에 억지로 끼워넣으려 하다보니 '만약'이라는 가정을 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과거의 그 사람을 소환한 이유도 현재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불만족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이기 때문에 '만약'의 가정은 과장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과장된 가정으로 현재와 미래를 재단하려 들면 아쉬움이 안들래야 안들 수가 없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역효과를 낼 따름이고 가능성 없는 가정이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굳이 아쉬워하기를 마다 않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 상황을 헤어짐이나 파경으로 결정 지어놓고서는 이루어질 확률이 0에 가까운 가정을 그럴싸한 근거로 삼기까지 한다.



옛날 그 사람을 그리워할 수도 있고 그 사람과의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그리워할 수는 있지만 '만약'이라는 가정까지 동원해서 지금을 부정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연애나 부부생활은 미래를 선택하는 행위지만 그 미래는 결국 현재로 완성된다. 지금의 연인에게, 배우자에게 충실한 것은 현재에 충실한 것이며 서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비록 그 최선의 결과가 마음에 차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경험을 가정해서 현재를 폄하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연인에게, 배우자에게 구차하게 군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말이나 행동, 마음이 상대에게 떳떳하지 못한 것이다. 나름의 생각에서는 구차해지기 싫어 적당한 핑계거리를 만들기 위해 예전 그 사람을 소환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런 행동과 발상이야말로 어리석은 사람의 구차함을 여실히 드러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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