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연애

'여자가 바람피우는 것은 남자탓'이라는 저급한 변명

김성열 2014. 4. 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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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찾는 것이 둘인데 그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를 구제해줄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변명이다. 그 중에 변명이 편의가 더 크다. 구제할 사람은 내가 쉽게 만들지 못하지만 변명은 내가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구제해줄 사람이 없을 때에는 변명에 올인할 수 밖에 없다. 위의 사진 속에 있는 이름 모를 사람의 생각처럼 말이다.


그냥 실없는 소리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보편적인 생각이자 일반적인 논리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런데 어느 변호사라는 분도 똑같은 논리를 펴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논리(정확하게 말하면 법리)로 먹고사는 전문가가 이런 식의 사고를 하는 것에 솔직히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물론 특정한 개인의 사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혹여나 이런 생각에 일시라도 동조를 했다면 얼른 발을 빼기 바란다. 왜냐하면 논리 따위는 없이 그냥 자신의 저열함을 벗어나기 위한 치졸한 변명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귀인 오류

사진 속의 글은 여성이 쓴 것이지만 반드시 남성을 탓하는(남성에게 여성의 바람피움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씌우기 위한) 논리로는 역부족이다. '여자'라는 단어를 '남자'로 바꾸기만 해도 논리의 허접함은 금방 드러난다.


남자친구가 바람피는 건 여자탓이야.


진짜 카사노바 같은 질 나쁜 남자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남자가 바람피우는 이유는

여자친구가 나를 외롭게 하니까


내가 너무 외롭고 초라하고 힘든데

다른 여자가 와서 잘해주니까


지금 여자친구랑 너무 좋고 행복하고 사랑하는데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올리 없잖아


남자친구가 바람펴서

화나고 속상하고 열받니?

니가 남자친구를 화나고 속상하게 했었던 거의

십분의 일도 안될거야


내가 생각하는 위 글의 문제는 바른 것과 그른 것의 구분까지도 가지 못한 채 피해자(아무리 헐렁하게 봐도 피해자에 가까운 사람)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젠장 맞을(격하지만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 상황을 연출하려는 의도가 너무 뻔하다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로 설명할 수 있다. 사회심리학자인 버나드 와이너(Bernard Weiner)가 체계화한 귀인 이론(Attributaion Theory)에서 귀인(특정한 행동의 발생 원인)은 상황적 귀인(Situational Attribution)기질적 귀인(Dispositional Attribution)으로 나뉜다. 


상황적 귀인은 특정 상황에서 발생한 행동의 원인이 상황에 의한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이며 기질적 귀인은 행동의 원인을 행위자의 기질 때문이라고 추론하는 것이다. 쉬운 예로 어떤 사람이 도둑질을 했을 때 그것이 그 사람의 불행한 환경과 사회적 무관심 때문이라고 추론하는 것이 바로 상황적 귀인이며 행위자의 기질 자체가 음흉하고 남의 것을 탐내는 성격이기 때문에 도둑질을 한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이 기질적 귀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상황적 귀인을, 남의 행동에 대해서는 기질적 귀인을 적용한다. 어떤 특정 행동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러한 다양성의 고려 없이 내가 했을 때는 상황 탓을, 남이 했을 때는 그 사람의 기질 탓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질적 귀인과 상황적 귀인의 차이 덕분에 기본적 귀인 오류가 발생한다. 위의 글은 기본적 귀인 오류의 전형이다.



바람은 나의 운명

(위에서 말한 상황적 귀인과 동일한 맥락에서) 바람을 피운 것(피우는 것)이 어떤 불가항력에 의한 것처럼 묘사한 것이 이 글이 어줍잖은 변명이자 핑계인 것을 잘 보여준다. '바람을 피우는' 것이 특정인의 실질적인 행위를 지칭하는 말임을, 그것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임을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운명의 구석탱이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선택을 강요당한' 일인듯 군다. 


이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흔히 쓰는 말로 '피해자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는다. 코스튬플레이는 진정한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인 '척'을 하는 것이다. 진정한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코스튬플레이를 할 필요가 없다. 내가 되고 싶은 누군가가 나는 아니기 때문에 때문에 코스튬플레이가 가능하다. 코스튬플레이의 한계가 그것이다. 비록 피해자처럼 보이게는 할 수 있어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해결 방안의 단일화

백번 양보해서 한쪽이 한쪽으로 하여금 외로움을 느끼게 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바람을 피우는 것을 무작정 정당화할 수는 없다. 외로움 때문에 바람을 피우는 행위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두 사람의 관계에서 바람을 피우는 것 말고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나를 외롭게 하는 사람을 떠나는 '이별'이라는 선택은 분명히 존재하며 '이별'을 피하기 위해,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두 사람의 협의와 노력도 얼마든지 가능하다.(이별이나 협의가 불가능한 관계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이니 여기서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만약 누군가가(연인이나 배우자가) 반드시 옆에 있어야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해결할 수 있는 기질의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바람을 피울 것이 아니라 나를 외롭게 한 사람을 떠나는 것이 맞다. 외로움 때문에 누군가를 만난다면서 나를 외롭게 한 사람을 뒤에 달고 다니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나를 외롭게 한 사람을 버리면 굳이 위와 같은 치졸한 변명 따위는 할 필요도 없으며 나의 외로움을 달랠 사람의 선택 폭도 넓어질 것이니 일석이조다.


한편으로 사람이 그리워서, 외롭고 힘들어서 연인이나 배우자를 바꾸는 결정을 했을 때 그것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이 두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쉽사리 이별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바람을 피우는 편법을 택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비난이 차마 두려워서 이별을 못한다면 바람을 피운 것에 대한 비난도 두려워서 바람을 피우지 않아야 한다. 바람 피우는 것을 들키지 않았을 때야 '어쩔 수 없이'라는 말이 통하지만 들켰을 때는 비난이라는 통념을 비켜가지 못한다.



바람을 피우고자 하는 것은 강제된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순수한 개인의 욕망이며 개인의 의지에 의해 선택할 수 있음은 당연한 얘기다. 본인의 의지로 '바람'을 선택하고서는 다른 남에게, 그것도 그로 인해 상처받을 누군가에게 원인을 전가하는 것은 너무 비겁하고 나쁜 짓이다.


바람 피우는 것은 자유지만 이상한 변명과 핑계는 늘어놓지 말자. 변명과 핑계가 구질구질하다는 것은 저지른 짓도 그렇다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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