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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책세상, 2007)

김성열 2014. 4. 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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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담이 공리주의를 주창한 것은 도덕 철학의 기초를 역설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벤담은 공리주의를 현실의 제도와 법을 상정하기 위한 객관적 기준으로 쓰고자 했으며 그것을 위해 사물의 효용을 정량화하는 방법까지 고안했다. 실제로 벤담을 중심으로 한 영국의 공리주의자들은 1830~1850 년대의 여러 정책과 제도 등에 영향을 주었다. 즉, 공리주의는 사회적 제도와 정책에 대해 효용(행복) 증대를 통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추구라는 논리적 배경을 제공했던 것이다.


벤담과 함께 공리주의를 기초했던 존 스튜어트 밀은 후에 벤담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밀은 공리주의의 기본적인 논리적 틀인 '효용'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벤담과는 달리 사물이 가지는 가치(효율)의 객관적 차이를 인정했다.(벤담은 빵 하나의 효용과 시 한편의 효용이 절대적인 차이를 갖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빵이, 누군가에게는 시가 더 큰 효용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삶에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기준'으로 공리주의를 제시하였다.


벤담의 공리주의가 현실적인 영향력을 갖는 논리로 역할을 하고자 했다면 밀의 공리주의는 철학의 제1원리로서 자리매김을 하고자 했다. 벤담의 공리주의가 자본주의의 논리를 윤리화하고자 했다면 밀의 공리주의는 도덕률 그 자체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밀은 효용의 양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벤담과는 달리 인간의 본성을 기준으로 효용의 질적 차이를 인정했으며 - 만족해 하는 바보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 효용의 질을 도덕적 기준으로 삼는 '교양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인격 도야를 강조했다.


철학의 제1원리로서의 공리주의는 밀의 뜻처럼 쉽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의 이익 뿐만 아니라 공익까지 고려해야 하는 덕에 개인의 소외를 불러온다거나 특정한 소수의 이익을 저버릴 수 있다는 한계로 인해 비판 받았다. 걸출한 사상가, 철학자, 경제학자의 손을 거치긴 했지만 이론적 약점은 존재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약점들이 공리주의를 주류 사상이 될 수 없도록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공리주의는 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하며 그 행복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동시에 사회적 이익의 증대를 위한 정부의 개입, 개인의 행복을 늘리기 위한 분배에 관한 사회적 제도의 수립까지도 정당한 것으로 여긴다. 다시 말하면 공리주의는 효용의 증진을 위한 경제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면서도 효용이 어느 일방으로 흐르지 않는 평등한 세계관을 주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자본가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지지하지만 부(효용)의 분배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사물의 효용을 논리적 틀로 사용하는 공리주의는 언뜻 물질의 가치에 집중하는 듯 하지만 벤담과 밀은 행복이라는 효용의 증대를 위한 인간의 자유를 기본으로 전제하고 있다. 이는 인간마저 효용으로 따지고 드는 (인간마저 상품으로 보는) 자본가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공리주의가 주류가 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자본주의자에게 불리한 사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대 행복 원리'를 따를 경우, 우리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든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이익을 고려하든, 가능한 한 고통이 없고 또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존재 상태에 이르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 된다. 나머지 모든 것은 이 궁극적 목적에 비추어서, 그리고 그것에 도움이 될 때 바람직한 것이 된다. 자기 경험,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서 자의식과 자기 관찰의 습관을 통해 최선의 비교 수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이런 궁극적 목적을 선호한다. 따라서 이것은 질을 검사하고 양과 대비해서 그 질을 측정하는 규칙이 된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이것은 인간 행동의 목적일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도덕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인간 행동을 위한 규칙과 지침이라 할 수 있는 그것을 잘 준수하기만 하면 최대한 많은 인류가 앞에서 묘사한 그런 존재가 될 것이다. 아니 인간뿐 아니라 사물의 본질이 허용하는 한, 감각을 가진 모든 피조물 역시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中


공리주의는 인간의 행복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긴 인본주의적 사상이다. 반면에 자본주의는 인간조차 상품화할 정도로 인간의 행복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자본주의가 주류 경제체제가 된 이후 인간을 중심으로 한 도덕은 뒷방 늙은이 꼴이 되었으며 그 자리는 자본과 상품이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자본과 상품이 가치이며 행복이고 도덕일 뿐이다. 밀의 공리주의는 너무 인간적이었기에 주류가 되지 못한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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