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읽고 생각하기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재일 옮김, 서해문집, 2005)

김성열 2014. 4. 2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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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재일 옮김, 서해문집, 2005)


존경과 복종은 상반되지는 않지만 서로 다른 말인 것은 확실하다. 존경을 얻기 위해서는 (사회가 인정하는) 선한 업적을 쌓거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위로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반면에 누군가를 복종시키려면 힘(권력)을 바탕으로 상대가 두려움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고 싶어하며 동시에 자신의 힘을 두려워해 복종하길 바란다. 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은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키아벨리는 존경과 복종 사이에서 줄타기를 따위를 하지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마키아벨리의 생각에 군주는 존경받기 보다는 복종을 얻는 편이 더 이로우며 주민들이 '복종의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능숙한 사기꾼이자 위선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라면 필요할 경우 부도덕하게 행동할 준비까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으로는 순수한 존경을 얻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존경으로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권력자에 대한 존경은 일시적이고 충동적이기 때문에 권력의 유지와 확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데다가 존경을 얻기 위해서는 권력이 약해지는 것을 감래해야 한다. 굳이 그런 위험을 무릅쓸 바에야 권력에 기반한 복종을 얻는 것이 권력을 유지하고 확보하는 데 더 유용하다는 것이다. 한번 권력을 상실하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15세기 유럽의 상황을 감안하면 무섭도록 현실적인 주장이다.


현대의 권력자들은 마키아벨리를 추종하지 않는다. 세상이 변해서 통치하는 사람과 통치하에 있는 사람의 관계는 15세기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 복종을 강제할 수 없을 뿐더러(그러한 시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존경의 필요성과 무게감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얻기 위한 인정투쟁이 극에 달한다. 


하지만 그 투쟁의 모습은 구차하기 이를 데 없다. 권력과 존경을 모두 얻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여우의 교활함'이 난무하고 '능숙한 사기꾼과 위선자'가 되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결국 면전에서 마키아벨리를 추종하지는 않지만(그랬다가는 권력욕에 찌든 인물로 낙인찍혀 '존경'을 얻을 수 없다) 마키아벨리가 권력자에게 요구했던 태도만큼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보았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철학자다. 권력자는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현실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므로 철학자의 시선은 버리고 권력자의 문제에 집중해야 함을 주장한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마키아벨리의 이런 노골적인 주장은 배척당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자본권력, 정치권력, 문화권력, 종교권력, 시민권력 따위의 여러 권력들이 자신들의 지분 확보를 노골화하는 지금, 오히려 마키아벨리의 처세술이 더 순수해 보이기도 한다. 적어도 마키아벨리는 인간에 대해 '배은망덕하고 변덕스러우며 사기꾼에다가 위선자이며 위험을 피하려 하고, 이익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명확한 입장을 밝혔지만 현대의 권력 추종자들은 인간에 대한 판단마저 자신의 이익에 따라 교묘히 위장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21세기의 세상을 본다면 아마 자신의 처세술이 무력하다고 한탄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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