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생각을 주는 말과 글

오타쿠는 인간관찰을 싫어하는 인간일 뿐이다

김성열 2013. 10. 30. 10:43
728x90



이런건 말이야, 실제로 어린애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

그런 관찰 못하면 못그리지.

이걸 안하고 아무것도 안보고, 자기 자아 밖에는 관심이 없고,

그런 일상 생활만 보내고 있고...


인간을 좋아하는지 어떤지에도 관련된 건가요?


일본 애니메이션은 말이지, 대부분 관찰을 기초로 하질 못하고 있어.

인간관찰을 싫어하는 인간이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오타쿠 소굴이 되는거지.


- 미야자키 하야오 인터뷰 중



관찰을 한다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관찰의 결과는 얼마나 관찰의 대상과 얼마나 교감했는가에 따른다. 방에 틀어박혀서 프라모델이나 만화 캐릭터에 빠져 있다고 해서 오타쿠가 아니다. 나 이외의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소통하고 교감할 생각이 없는 것도 또다른 형태의 오타쿠다.


관심이 없고, 소통하고 교감할 마음이 없다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자신도 인간이면서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득도를 했던지 오만한 자기 우월감에 빠져 있던지 둘 중에 하나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인간인 우리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관찰하고 소통하고 교감한 결과들이다. 관찰과 숙고에 기반하는 예술품은 말할 것도 없고 일상 생활에서 쓰는 공산품마저도 시작은 인간에 대한 관찰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이런 결과물들의 이기는 누리면서 그것의 근원이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면 무임승차하겠다는 발상이며, 그저 하찮은 이기주의,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내가 세상에 피해를 준 것이 없는데 왜 문제인가?'라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어 보이는 것도 없다. 이는 피해를 주었냐 주지 않았냐의 문제가 아니라 결과의 공유에 대한 존중,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중심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로부터 시작되어 다른 이에게로 향한 관심이 모여서 세상은 앞으로 나아간다. 세상의 더 나음을 당당하게 누리려면 한줌의 관심이라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모두가 잘 살아가기 위한 지혜다.

300x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