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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을 놓은 국정원, 정신줄 놓은 검찰 -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김성열 2014. 2. 1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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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관련해 검찰과 국정원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자료가 위조되었다는 사실조회 결과가 '터져' 나왔다. 검찰도 검찰이지만 국정원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렸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파장이 채 가라앉지도 않은데다가 꼭 간첩을 잡는 일이 아니더라도 국가기관이 누군가를 범법자로 만들기 위해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킨 것은 국가의 권한을 옳지 않게 쓴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성의 끈을 놓은 국정원

알려진 것처럼 이 사건은 2012년 초에 시작해 2013년 8월에 1심 재판이 종료되었다. 1심에서 재판부는 피고인 유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 했고 그해 2013년 10월에 항소심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위조자료로 드러난 피고인 유씨의 출입경기록은 이 항소심이 시작되자마자 등장한 것이다.


1심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무죄 판결은 국정원 입장에서 체면을 구긴 일이며 이로 인해 절치부심했을 것은 당연하다. 1심 이후 석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피고인의 행적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한 것을 보면 국정원이 얼마나 애가 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 자료가 거짓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국정원은 애를 더 (활활~) 태우게 생겼다.


간첩을 잡는 것은 국정원의 임무다. 그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론할 수 없으며 그 임무의 중요성도 쉽게 폄하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임무의 수행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도 정당하고 명백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러한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조건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 "있는 간첩"을 잡아야 할 국정원이 '없는 간첩'을 만들어낸 꼴이 된 것이다. 이는 이성을 끈을 놓지 않고서는 못하는 일이다.


출처 - 경향신문


국정원은 어디에

이성의 끈을 놓은 국정원이 다시 이성의 끈을 붙들어 자료의 위조를 인정하면 모든 일은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국정원이 검찰에 넘겼던 자료는 증거로서의 효력이 없으므로 검찰 입장에서 항소심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국정원은 '어떤 간첩을 잡아낸'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간' 것에 대해 책임질 일이 남는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정원의 제대로된 해명이나 설명은 없다. 국정원이 선양영사관을 통해서 받았다는 자료 중 한 건을 제외하고는 선양영사관이 중국 공안부로부터 자료를 받은 기록(팩스기록)이 없다는 얘기가 외교당국 관계자로부터 나왔으며 선양영사관의 국정원 직원이 개입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난무하지만 국정원은 말이 없다.


검찰과 국정원은 사귀는 사이인가

검찰이 이래저래 사태 진화를 해보려 하고 있지만 국정원을 쏙 빼고 얘기하는터라 의혹만 더 키우는 모양새다. 서울중앙지검은 "해당 문건은 정상적으로 입수한 문건이기 때문에 위조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입수한 문건'이 위조라고 일단 판명이 났다. 그렇다면 그 문건의 입수 경로를 포함한 모든 것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의심하는게 합리적이다. 물론 문건이 위조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입수 경로를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한 검토와 조사 후에 내릴 결론이다. 처음부터 위조가 아니라는 투로 말하는 것은 혼란과 의심을 가중시킬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문건의 위조여부는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가 확인한 것이다. 중국 외교문서의 진위 여부를 중국대사관에서 확인했다는 말이니 지금으로서는 상황 판단과 검토의 기준이 될 수 밖에 없다. 검찰의 말대로 문건을 위조라고 단정하지 않으려면 오히려 위조라고 확인해준 중국대사관 영사부를 의심하는게 맞다. 지금 검찰은 입수 경로가 정상이어서는 나올 수 없는 문건을 들고 입수 경로가 정상이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그림에서 국정원은 문건 전달의 역할로 한정되어 있다. 국정원을 이번 문건 위조와 최대한 무관하게 만들기 위해서 국정원을 단순한 문건 전달자로 상정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검찰의 의도가 힘을 발휘하려면 국정원이 관계되어 있는 '입수 경로'가 정상이어야 한다. 지금 검찰은 국정원의 관련 정도를 낮추기 위해 '입수 경로는 정상'이라는 '비정상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검찰은 이성을 놓은 국정원과는 달리 정신줄을 놓은 듯 하다.



설마가 간첩 잡는다

이번 일은 국정원과 검찰의 '불순한 의지'가 만든 합작품이다. 실체적 진실을 찾는 재판임에도 불구하고 다급해진 검찰과 국정원이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는 부정을 저지른 것이다. 다른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다. 재판의 목적인 진실을 밝히는 것과는 관계 없이 자신들이 믿는 것과 재판에서 이기는 것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안위를 책임진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무조건 이겨야 하는 승부로 취급하고 그마저 반칙까지 하는 것은 관용을 구할 수 없는 일이다.


죄 짓지 않은 사람을 죄 지은 사람으로 둔갑시키며 국가의 안위와 존망을 운운하는 것은 사람들을 겁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패배시키고자 했던 상대가 과연 간첩이였을까, 어쩌면 국민은 아니였을까? 설마가 간첩 잡는 세상이라 의심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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