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김무성의 '한 자녀 반성론'을 통해 본 정치인의 무지와 권위주의

김성열 2014. 2. 1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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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저출산율이 세계 1위가 된 지 오래인데, 20년 뒤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까 다들 걱정한다"

"이 자리에 자녀를 한 사람 가진 분들은 반성하셔야 한다. 이혜훈 최고위원은 애를 셋이나 낳고도 (서울)시장에 나오지 않느냐"

"우리 모두 이상화, 김연아 같은 딸을 낳아야 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최고중진회의에서 저출산을 지적(질)하면서 한 말이다. 그냥 텍스트만 놓고 보면 별 문제 없는 것 같지만 컨텍스트(맥락)을 보면 문제가 있다. 한 나라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의 생각의 본질이 은근히 드러나기 때문이고, 그 본질의 근원이 영 불편하기 때문이다.


국민 위에 있는 국회의원

국회의원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입법을 주임무로 하는 사람이다. 좋은 국가가 되기 위해, 국민들이 불편함 없이 잘 살기 위해 여러가지 법을 만드는 사람이 국회의원이다. 국가에 문제가 있을 때 직접적인 문제 해결을 할 수도 있지만 법과 제도라는 기반을 비켜나가서는 안된다. 국가적 사안을 해결하는 것이 국가의 임무라면 그 해결책의 근간을 제시하는 국회의원 역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100년 전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는 최대 덕목은 책임윤리이라고 했고 지금도 유효한 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요즘 정치가들은 그러한 책임에서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다. 김무성 의원의 발언도 책임에서 거리를 두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저출산이 국가적 문제라면 국회의원은 그 문제에 대해 깊이 파고 들어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하고 실행할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기껏 하는 얘기가 한자녀 가정은 반성하라는 것이다. 



책임을 지고 대책을 수립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같이 있던 국회의원들에게 '반성하라'라고 얘기했다면 그 의식 속에 반성해야 할 주체가 어디 국회의원 뿐이겠는가? 김무성 의원의 말은 결국 저출산은 아이를 많이 낳지 않은 국민 개개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얘기 밖에 안된다. 김무성 의원의 말을 그냥 쉽게 풀어 쓰면 이렇다. "우리 국민들 애 안낳아서 큰일났어. 이렇게 저출산이 계속되면 나라 망하는데 말이야. 전부다 한명씩만 낳고 있으니 원... 둘씩, 셋씩 쑥쑥 낳아줘야 하는데 말이야..." 


나는 김무성 의원의 발언에서 그의 사상이 권위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권위주의가 아니라면 '국민을 위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가 국민들 위에서 내려다보며 사태를 평론하고 국민의 책임론을 얘기할 리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모두가 국가의, 국민의 공복이다. 공복은 국민의 눈치를 봐야 하지만 이들은 눈치를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자리가 국민을 위한 공복의 자리가 아니라 권세 있는 지도자의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국민을 지도하고 계몽하기 위한 특정한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며 그 지위와 권위의 힘을 맹신하는 것이 권위주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김무성 의원의 무지

김무성 의원의 이번 발언에서 또 하나 눈치 챌 수 있는 것이 김무성 의원의 무지(無知)다. 저출산의 책임이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국민 개개인에 있다면 왜 국민들이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이 문제풀이의 시작이다. 문제의 원인을 알고 해결책을 내놔야 하는데 김무성 의원은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김무성 의원이 정의 내린 문제와 해결책은 이렇다.


"국민들이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것이 문제이니 국민들이 아이를 많이 낳으면 문제가 해결된다"


이런 소리는 중학생 정도만 돼도 안한다. "공부를 잘 못해서 성적이 안나오는 것이 문제이니 공부를 잘하면 문제가 해결된다"와 같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의 핵심과는 거리가 멀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가 있어야 하며, '어떻게'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국민들이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이유를 알아야 아이를 많이 낳도록 하는 해결책이 나올 수 있는데 기껏해야 하는 소리가 이상화, 김연아 같은 딸을 낳자는 얘기나 한다. 김무성 의원은 '어떻게'와 '무엇'을 구별못하거나 출산 문제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무지의 상태인 듯 하다.


정치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국민에게 관심이 없다. 그냥 자기가 있는 자리에만 관심이 있다. 자리가 목적이기 때문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선거기간만 되면 발바닥에 땀띠가 나도록 돌아다닌다. 그러다 당선이 되면 목적을 이루었으니 국민에게는 볼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국민에게 관심이 있다면 국민들이 왜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지 반나절이면 알 수 있다. 하다못해 동네 반상회에 한두번 나가서 주부들 말에만 귀기울여도 알 수 있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이상한 소리를 할까? 그것은 국민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알아도 모르는 채 하는 것이다. 무관심은 내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내 일이 아닌데 굳이 나서서 해결책을 내거나 할 필요가 그들에게는 없다. 그저 선거기간 때에나 관심 있는 척 하면 그만이다.


다만 김무성 의원은 좀 몰라서 그러는게 아닌가 싶다. 이상화, 김연아 같은 딸을 낳아야 한다는 말은 육아라는 것에 대해 생각도 별로 없고 잘 모른다는 얘기다. 이상화와 김연아는 얼음판을 깨고 태어나지 않았다. (탄생설화치고는 너무 춥다) 젖병을 빠는 대신 스케이트 날을 갈면서 자라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로 태어나 지금의 이상화와 김연아로 '자라난' 것이다. 김무성 의원은 사람들이 그런 육아와 자녀교육이 힘들어서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사람의 자질과 운명이 결정되어 있는 듯이 말한다. 김무성 의원은 금뱃지를 마빡에 붙이고 태어났는지 궁금하다.


님들아 관심 좀...

국민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자리 꿰차고 앉아서 국민의 정서나 감정은 신경쓰지도 않는 모습, 본인들은 미안하지도 않나 모르겠다. 막스 베버의 정치인의 책임윤리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지 오래다) 하지만 국민에게 최소한의 관심은 보였으면 한다. 국민을 위해 뭔가를 책임지지 못해도 국민들 속을 쓰리게 하는 말은 덜 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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