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삶과 사람

속물의 가치관은 과연 가치가 있는가?

김성열 2014. 1. 1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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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차피 다 속물이야." 속물 얘기가 나오면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금 과장되기 했지만 맞는 얘기다. 자본주의에 살면서 물질과 인간과의 거리는 너무나도 가깝기 때문에 속물근성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단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없다고는 장담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그것을 하나의 가치관으로 삼을 때는 충분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가치관은 남이 정해주거나 나에게로 와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속물을 "인간의 가치와 (사회적)지위 사이의 방정식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정의 한다.(A snob is a person who believes in the existence of an equation between status and human worth. Wikipedia.org)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면 "지성, 재산, 교육, 가문, 권력, 체력, 계급, 아름다움 따위를 이유로 어떤 사람들이 그/그녀보다 본질적 열등하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The term also refers to a person who believes that some people are inherently inferior to him or her for any one of a variety of reasons, including real or supposed intellect, wealth, education, ancestry, power, physical strength, class, taste, beauty, nationality, fame, extreme success of a family member or friend, etc. Wikipedia.org)


알랭 드 보통이 정의하는 속물은 쉽게 말해 "어떤 사람의 일부분으로 그 사람 전체를 정의해버리는 사람"이다. 직업, 학력, 연봉, 부모의 재산 따위로 사람을 평가하고 정의하는 사람 말이다. 가치의 속성이 우선하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저마다 속물근성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이유 중의 몇몇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가 잦다.


물론 이것은 누군가의 개인적 가치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자신의 삶에서 어떤 요소들을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속물의 가치관이 갖는 편협함과 극단성을 생각하면 그렇게 속물을 가볍게 여길 수만은 없다. 속물은 일부분으로 어떤 사람의 전체를 판단한다. 몇평짜리 아파트에 사는지, 타고 다니는 승용차는 얼마짜리인지, 월급이이 얼마인지,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는 뭔지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한다는 얘기다.


그 기준이 반드시 물질적이지 않거나 물질과 연관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인서울 대학을 나왔는지 지방대를 나왔는지, 한 달에 책을 얼마나 읽는지, 시사에 관심이 얼마나 많은지, 얼굴은 얼마나 이쁜지(잘생겼는지), 남편의 직업은 뭔지, 자녀가 공부를 잘하는지도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이처럼 한사람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 중에 몇개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결정해버린다는 것은 판단의 정확도를 떠나 사람에 대한 오만함이다. 


이러한 편협함과 더불어 한번 평가하고 판단한 사람에 대해서는 좀처럼 그것을 바꾸려 하지 않는(바꾸기 힘든) 극단성도 문제가 된다. 한번 지잡대를 나온 사람은 그냥 지방대 출신이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다가 대기업 가는 사람은 드물다. 아파트 평수가 몇년 사이에 후다닥 바뀌거나 승용차를 1, 2년 사이에 휙휙 바꾸는 사람도 드물다. 속물의 가치관은 앞으로의 가능성보다는 과거와 현재의 특정 상태를 판단의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매우 극단적이다.


속물로 사느냐 마느냐, 그 가치관을 내 삶에 기준으로 삼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각자가 결정할 일이다. 하지만 삶의 기준과 목표를 수립하고 그것에 열정을 쏟아야 하는 20대와 30대에게 속물의 가치관은 어울리지 않는다. 남과 비교하여 삶을 평가하는 가치관으로는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의 가치는 스스로 규정해야 한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 얻어지는 속물의 가치를 떠받치고 사는 것은 다른 이가 정해준 가치관으로 삶을 꾸리는 것과 다름 없다. 


"인간은 어차피 다 속물이야" 라는 말은 남의 가치관으로 사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하찮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20대와 30대는 핑계를 찾는 시간보다 가치있는 목표를 향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시간이 더 많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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