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삶과 사람

나이 따지고 드는 사람들의 한없는 안쓰러움

김성열 2014. 1. 7.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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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나가보면 공적인 자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이를 고백해야 하는 때가 종종 있다. 그 경우는 두가지인데, 하나는 내가 먼저 나이를 까는(경박해도 이 표현이 가장 실랄할 듯 해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의 종용에 못이겨 나이를 까는 것이다. 나이를 서로 비교분석하는 것은 가부장적 사회의 구습 때문이네, 친근한 백의민족적 분위기 때문이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네 하면서도 막상 나이로 레이스를 한번 하고 나면 딱딱하던 분위기도 새삼 흐물해지는 듯한 환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중독성 때문인지 몰라도 낯이 좀 익었다 싶으면, 분위기가 좀 눅눅하다 싶으면, 뭔가 드세울 일이 있으면 주민번호 앞 두자리를 따려고 덤벼드는 사람이 드문드문 있는대다가, 어느샌가 그 중독성에 감염되는 사람이 나오기도, 내가 그렇게 되기도 한다. 허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나이를 따지는 사람은 참 안쓰러운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내가 상대보다 월등한, 혹은 확실한 권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나이를 따질 일이 없다. 권위나 권력은 나의 위치나 부(자본주의니까 속쓰려도 어쩔 수 없음), 가능성, 능력, 정당성 등을 통해 인정받는다. 이것이 상대를 압도한다면 나이를 따질 필요가 없다. 보통 나이를 따지는 것은 그러한 권위와 권력의 저울질에서 승리의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또는 권위와 권력에서 밀릴 때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가장 흔한 예라면 자동차 접촉 사고로 말다툼 하다가 "너 몇살이야!"하고 고함 지르는 것이다. 과실이 누구에게 있냐를 따지는 자리에서 나이가 뭔 소용인가? 물론 그렇게 고함고함을 친 사람은 '어린 놈의 자식이 하도 네가지 없이 굴어서 튀어나온 얘기'라고 하겠지만 생면부지의 사람보다 나이 많아서 뭘 더 얻겠다는 것인가? 나의 잘못 없음이 명백하다면 보험사에 맡기면 그만이다. 반대로 내 잘못이 크더라도 잘못을 많이 한 사람의 입장으로 그저 고약한 놈 만났다고 생각할 일일 뿐이다.


결국 나이를 따지는 것은 권위나 권력에서는 밀렸을지 몰라도 인습적 차원에서 윗자리는 내가 차지하고 있으니 그 권력을 인정해달라는 것이고 저울을 내 쪽으로 기울게 하고 싶은 욕심이다. 따지고 보면 나이를 뺀 저울질에서 자신이 상대보다 가벼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다고 봐야한다. 더 안쓰러운 것은 쓸데없이 생물학적 노화까지 인정한 판국이니 상대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는 고백을 다 해버린 것과 다름없다.


이런 주민번호 공개를 흔쾌히 받아들인 상대가 있다면 그도 권위와 권력의 저울질에서 확신을 얻지 못한, 하지만 상대보다 얄팍한 권위와 권력이라도 갖고 싶은 옹졸한 욕심의 소유자일 뿐이다. 서로 가진 것이 미약하니 나이로 승부를 보려는(물론 그들에게는 진검승부) 사람들을 협객이나 대인으로 봐주긴 어렵다.


학번, 띠, 주민번호 앞자리 따위로 사람 위에 서려고 하는 것은 가진 것이 뭣도 없음을 고백하는 괜찮은 방법이다. 그런 것으로 형이라고 오빠라고 불릴려는 사람치고 제대로 뭘 가진 사람 없다. 권위나 권력은 내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상대가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나이 따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나이 따위에 밀리지도 말고 밀어붙이지도 말자. 굳이 사회 생활에서 나이로 먹고 가겠다라면 200살 정도 되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 전에는 나이 따지는 짓일랑 엄두도 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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