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삶과 사람

당신을 어설프게 만드는 비판 방법 4 가지

김성열 2013. 12. 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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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내가 한 행위에 대해 비판을 들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비판을 수용하기 싫거나 괜한 반감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비판을 받는 사람만의 잘못은 아니다. 비판 받는 사람의 속좁음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비판을 하는 쪽의 사려깊지 않음이나 말 실수, 또는 계획된 공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속내야 어쨌든 간에 어설픈 비판은 화를 부르고 관계를 단절시키게 마련이다.


올바른 비판은 마음을 열게하고 긍정적인 다짐을 갖게 하고, 개선과 발전의 씨앗이 된다. 하지만 어설픈 비판은 귀를 닫게 하고 마음을 움츠려들게 하고 반감을 산다. 아쉽게도 우리는 어설픈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4가지 어설픈 비판을 살펴보고 나는 몇 개나 해먹었는지(?) 생각해보자.


상황을 가정한 '라면 비판'

우리가 흔히 하기 쉬운 어설픈 비판은 '~라면'이라는 가정을 깔고 가는 이른바 '라면 비판'이다. 여러 방법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어떤 일을 했다고 하자. 이 때 '라면 비판'을 하면 이런 식이다. 


"이 방법 말고 그 방법을 썼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이건 이 방법 말고 그 방법을 썼어야지~" 


'라면 비판'은 상황을 가정하고 그것을 반영한 결과를 평가하거나 비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다르다는 그 방법을 써보지 않는 이상 그것이 지금 선택한 방법보다 더 좋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 가정의 결과가 100%가 아니라는 논리적 약점을 갖는다.


비판이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더구나 논리적이어도 듣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먹힐까 말까 하는 것이 비판이다. 그런데 실현되지도 않은 가정을 근거로 비판을 한다면 그 비판이 논리적이라고 생각될 리는 만무하다. 나아가서는 괜한 아는 척이나, 내가 너보다 더 잘 안다라는 잘난 척으로 느끼기 쉽기에 어설픈 비판이 되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비판

우리는 간혹 예측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일을 그르치는 때가 있다. 협력 업체에 전해줘야할 물건을 택배로 고객에게 보냈는데, 마침 그날 밤에 폭설이 쏟아져 택배가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다고 하자. 상품을 늦게 받은 업체 담당자가 "아니 왜 물건을 택배로 보냅니까? 퀵으로 보냈어야죠."라고 한다면 그 말에 그러네~ 하면서 고개가 끄덕여지겠는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그것을 고려해서 비판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예측이 안되는 일까지 비판의 범주에 넣어 가중처벌하려는 것은 그냥 못되게 굴겠다는 것 밖에는 안된다. 비판을 하는 사람이야 일기예보가 어떻고 하늘색이 저떻고 떠들면서 나름 예측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겠지만 일 지나고 난 다음에 그런 말 못할 사람 없다. 오히려 위와 같은 상황이라면 처음부터 퀵으로 보내달라고 하는게 맞다.


인신공격을 동반한 비판

제일 싸움이 많이 나고 감정이 많이 상하는 것이 인신공격을 동반한 비판이다. 사실 어설픈 것이 아니라 어리석다고 하는 편이 어울린다. 비판은 옳고 그름을 가리거나 판단하는 행위다. 평가의 성격이 포함될 때는 얼마나 잘 했느냐 못했는냐를 따질 수도 있다. 그리고 거기까지여야 한다.


"김대리, 아침에 준 기획안, 예산 측정이 명확하지 안잖아~ 제발 생각 좀 하면서 살아라, 응?" 

"그래도 아빠라면 휴일에는 애들하고 좀 놀아줘야 하는거 아냐?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아저씨, 술을 마셔도 곱게 마셔야지 이게 뭡니까? 이러고 다니는거 아저씨 자식들도 알아요?"


맞고 틀림,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앞 구절은 어떤 사안에 대한 비판이다. 하지만 뒤에 것들은 앞의 비판과 별로 상관이 없다. 그냥 성질대로 내지른 말일 뿐이고 다분히 공격적이다. 이쯤 되면 앞의 비판을 수긍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뒷말의 기분 나쁨 때문에 앞의 비판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첫 대사(?)를 보면, 예산 측정이 미흡하다는 지적은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없이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기획안과는 상관 없는 인신공격으로 느낄 수 밖에 없다. 비판을 하려 했으면 비판만 해야지 괜한 오지랖으로 사람 성질 돋구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맞다.


비판을 가장한 비난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비판은 옳고 그름을 가리거나 판단하는 행위다. 그러니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이 옳지 않거나 좋지 못했으니 그것을 행한 당사자도 옳지 못하고 나쁘다라고 하면 그 때부터는 비판은 온데간데 없고 비난만이 남는다. 비난은 비판과 달리 나쁘게 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비판 단계에서부터 나쁘거나 옳지 않은 부분만을 골라내거나 그 부분만을 확대하여 비난의 도구(근거)로 사용하기 마련이다. 이쯤되면 비판이 주목적이 아니기에 어설픈 비판이 될 수 밖에 없다.


어떤 사안에 대해 평가나 비판을 할 때 유독 상대방의 성질을 돋우거나, 불쾌감을 증폭시키거나, 심지어는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처음에는 비판으로 시작하지만 어느샌가 비난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인신공격까지 동반된다면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리는 최악의 상태로 치닫게 된다.



20대나 30대는 아직 평가나 비판을 하는 것보다는 받는 일이 더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평가나 비판을 하는 일이 많아진다. 게다가 젊을 때는 비판을 잘 듣는 것이 중요하지만 나이가 들면 비판을 잘 하는 것도 더불어 중요한 일이 된다. 그러니 비판에 대한 의식도 일찌감치 다듬어 두는 것이 좋다. 나이 들어서 꼰대라는 소리 듣기 싫다면 더더욱 필요한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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