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심심한 사과'와 쿨병 걸린 꼰대

김성열 2022. 8. 29. 16:33
728x90

 

때 아닌 심심한 사과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심심'을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뜻으로만 알았던 몇몇 사람들의 분노가 피식 웃음을 짓게 한, 흔히 있는 해프닝 정도의 일이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사흘'을 '4일'로, '금일'을 '금요일'로, '병역'을 '역병'으로, '유선상'을 '인간 유선상 씨'로 아는 바람에 생긴 에피소드가 인터넷에는 숱하게 박제되어 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실질 문맹률이나 독서량 따위를 엮어서 판을 키우려고 한다. 얼마든지 그런 측면에서 바라보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반대로 그냥 가벼운 우스개거리로 여길 수도 있다. 단어의 뜻을 몰라서 그랬으니 알려주면 그만이고, 알면 그만이다.

 

어느 쪽에서 보던 간에, 대단히 큰 일도 아니고 심히 염려할 일도 아니다. 단어 뜻을 몰라 오해를 하거나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해프닝은 어제오늘 갑자기 생긴 일도 아니다. 서울을 방문한 나의 경상도 친구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가며 사장님께 "욕보세요~"라고 말했다가 욕먹은 일이 25년도 더 됐다. 실질 문맹률이나 독서량 같은 것들도 이미 오래된 떡밥이다. 그것 때문에 나라가 거꾸로 가거나 GDP가 폭락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건 바로 '모름'에 대한 당사자의 태도다. 사람은 얼마든지 모를 수 있고, 잘못 알아서 오해를 할 수 있다. 누군가 알려주든 스스로 알든 간에, 자신이 몰랐거나 잘못 알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내가 몰랐구나."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자신의 '모름'을 인정하면서도 굳이 시비를 거는 경우가 있다. 대충 이런 식이다.

 

"나는 그 말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몰라도 사는 데 지장 없잖아? 쉬운 말 두고 그런 어려운 말 쓰는 게 더 문제 아냐?"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아주 쿨해 보인다. 내키지 않거나 별다른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그냥 모르는 채로 살겠다는 것도 남의 눈치 안보는 대단히 쿨한 태도다. 여기까지만 하면 딱 좋다. 하지만 뒤를 이어 따라오는, 자신이 모르는 말을 사용한다는 식으로 시비를 거는 바람에 쿨함은 빛이 바래지고 말았다. 이런 식의 문제 제기를 한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나와 다른 세대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꼰대 마인드를 지녔다는 것이다.

 

상황을 거꾸로 적용 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제곧내, 엄근진, 댕댕이, 댕청 따위의 줄임말이나 야민정음식 조어는 젊은 세대들에게 일상적으로 쓰인다. 반면에 좋은 우리말과 한글을 왜 그렇게 망치느냐고 하는 기성세대들도 있다. 젊은 세대들 입장에서 이런 문제 제기는 꼰대질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이런 꼰대질은 어느 세대 사이에서도 쌍방이 가능하다.

 

특정 연령이나 세대를 꼬집으려는 게 아니다. '모름'에 대한 태도에 따라서 세대, 연령, 성별 따위에 관계없이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쿨함'을 행동양식으로 삼아왔다면 긴장해야 한다. 자신의 오류나 무지가 드러날 때 그냥 겸허히 받아들이면 쿨함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무안함을 보상받기 위해 상대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부정하는 순간 쿨병 걸린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쿨하다는 소리를 못 들을망정, 꼰대 소리는 듣지 말자.

300x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