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나경원, 그 처절한 발버둥의 이유

김성열 2019. 5. 1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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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행보가 연일 이목을 끈다. 한동안 입조심 하나 싶었더니 일베들이나 쓰는 저속한 말을 함부로 해대는 바람에 또 욕 세례를 받고 있다. 물론 욕 세례는 주로 나경원 원내대표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듣는다. 현재 진행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면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투사가 빙의된 듯한 나경원 원내대표의 몸짓과 목소리에 사람들은 편을 나누어 야유와 환호를 보내고 있는 판국이다. 


물론 지금이 독재의 시대거나 민주주의가 무너진 상황이 아니므로 나경원 의원을 민주투사로 부를 수는 없다. 오히려 독재정권이나 경제 폭망, 사회주의 경제화 같은 거짓과 과장을 내세워 대중을 선동한다는 점은 정치인으로서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서울대학교를 나와 판사까지 한 사람이 독재나 사회주의 경제의 정의를 모를 리 없다. 그런 거짓말까지 해가며 대중을 선동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나경원 의원이 선동의 선봉에 서서 분투하는 이유는 '보수의 잔다르크'가 되기 위해서다. 여기에서 말하는 잔다르크는 나라를 구하는 열사가 아니다. 나라가 망하지를 않았으니 나라를 구할 잔다르크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경원이 원하는 포지셔닝은 '보수의 아이콘', '보수의 핵인싸'다.  박근혜 탄핵과 대선 이후 보수 진영에는 중심을 점하는 인물이 없었다. 나경원 의원은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보수 진영의 아이콘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가 보수의 아이콘이 되길 바라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자신이 보수의 아이콘이 되어서 정치 세계의 최고 자리를 두고 진보의 아이콘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내는 장면을 만들고 싶어서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얘기다. 


하지만 워낙 그 말과 행동들이 이치에 맞지도 않고 졸렬하다 보니 비웃음을 많이 산다. 어차피 민주투사가 아닌 것은 알고 있으니 그러려니 해도, 4선 의원에다 제 1야당의 원내대표씩이나 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기품은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논리적인 문제 지적과 대안의 제시 대신 격한 표현으로 도배된 말을 토해내는 데만 집중한다. 그렇게 토해낸 말들은 경우에 맞지 않아 설화(舌禍)를 자초하기 일쑤다. 뱉어놓고 사과하는 것이 근래에만 수 차례인지라 이제 나경원 의원의 사과에서는 진정성을 찾기도 어렵다.


하도 일을 많이 치다보니 나경원 의원의 행태에 '왜?'라는 의문이 자연히 따라 붙는다. 해석이야 여러 갈래로 가능하겠지만, 표현 방식을 선택하는 감각이나 사리분별 능력, 자신의 실수를 기억하지 못하는 지능 따위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나경원 의원은 그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현명한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분명 똑똑한 축에 드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나베', '토착왜구' 같은 오명을 무릅쓰면서까지 비난과 비웃음이 쏟아질 가능성이 지극히 높은 행위를 반복해서 구사하고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고 봐야 한다. 공자의 제자인 안회가 이런 말을 했다.


鳥窮則啄, 獸窮則攫, 人窮則詐, 馬窮則跌(조궁즉탁, 수궁즉확, 인궁즉사, 마궁즉질)

새는 궁하면 사람을 쪼고, 짐승은 궁하면 사람을 할퀴며, 사람은 궁하면 거짓말을 하고, 말은 궁하면 날뛴다.


지금 나경원 의원은 2500년 전 안회가 말했던 새와 짐승, 사람, 말의 행동을 혼자서 다 보여주고 있다. 이언주 의원이 되겠다는 '광야에 선 한마리 야수'보다 훨씬 무서운 스핑크스가 되어서 더불어민주당을 쪼고, 대통령을 할퀴고, 대중에게 거짓말을 하고, 패스트트랙 저지하려고 날뛰고 있다. 이유는 안회의 말에 그대로 나온다. 궁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경원 의원은 지금 궁함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다.


나경원 의원이 발버둥 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황교안이 당대표로 당선될 때까지도 좋았다. 황교안 당대표는 국회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원내에서는 힘을 쓰기가 어렵다. 보통 당대표가 원내대표보다 끗발이 높다. 하지만 황교안은 국회의원도 아닌 데다 정치 경험도 전무하고 약점도 제법 많다. 나경원 의원의 입장에서 당내뿐만 아니라 보수진영에서 입지를 두고 경쟁하기에는 만만한 상대였던 것이다.



황교안이 대표가 된 후부터 나경원 의원은 노골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드높여 왔다. 그런 행동들은 때로 사달을 만들긴 했어도 나경원 의원의 존재를 부각하는 데는 분명 한몫을 했다. 그 절정이 선거법과 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지정을 앞두고 벌어진 자유한국당의 국회 난장판 프로젝트였다. 나경원 의원은 빠루를 치켜들고 발판 위에 올라서서 야권의 사령탑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높였다. 황교안 대표는 국회의원이 아니었기에 국회 내에서 벌어지는 일에서는 나경원 의원이 상대적으로 더 돋보일 수 있었고 나경원 의원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난리 이후 자유한국당이 장외 투쟁에 나서는 순간부터 나경원 의원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국회 안에서는 나경원 의원의 끗발이 먹힐 지 몰라도 국회의 바깥에서는 그렇지 않다. 당이 움직일 때는 엄연히 당대표가 중심이 된다. 황교안 대표와 보수의 아이콘, 보수의 핵인싸 자리를 놓고 다투는 나경원 의원 입장에서 장외 투쟁은 홈그라운드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원내에서는 활동할 수 없는 황교안 대표는 장외 투쟁을 이어가는 편이 유리하고 나경원 의원은 원내로 들어가야 좋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이 대통령과 황교안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나경원 의원 입장에서는 청와대가 영수회담을 받아주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있을 것이다. 만약 영수회담이 성사된다면 보수 진영에서 황교안 대표의 위상은 치솟을 수밖에 없다. 야당이나 보수 진영은 대통령과 1대 1로 마주한다는 것을 곧 대통령급이라고 이해(실제로는 '오해'지만)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나경원 의원은 본인이 장외 투쟁의 출구전략 주역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인 이인영 의원과의 만남에서 파란 재킷을 입고 방실방실 웃으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되겠다는 되지도 않는 드립을 괜히 친 것이 아니다. 원내대표끼리 꼬인 정국을 풀면 장외 투쟁의 출구전략을 나경원 의원 자신이 주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대통령과 황교안 대표가 영수회담을 해버린다면 장외 투쟁의 출구전략마저 황교안 대표 손으로 넘어갈 것이 뻔하다. 아마도 나경원 의원은 자유한국당의 영수회담 제안에 대해서만큼은 청와대와 진보진영의 편일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경원 의원은 안달복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심정이 애처로운 발버둥으로 표현된다. 지금 나경원 의원은 거칠고 저속하고 야비하고 비루한 표현을 해서라도 장외 투쟁에서 눈에 띄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도권을 황교안 대표가 잡고 있는 장외 투쟁에서 '보수의 투톱' 정도의 자리매김을 해놓을 수 있다. 그 정도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보수의 아이콘을 향한 다음 걸음을 옮기기가 어렵다. 이 사실을 나경원 의원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래서 지금 저렇게 발버둥 치는 것이다.


나경원 의원의 발버둥이 먹힐지 말 지는 쉽게 예견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듣고 싶은 사람들에 한해서만 그 발버둥이 드라마틱해 보인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처음부터 그 꼴이 보기 싫었던 진보 진영의 사람들과 그 구질구질함에 질려서 한발 물러선 중도층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황교안 대표와의 경쟁에서 이긴다고 해도 제대로 된 보수의 아이콘은 될 수 없다. 계속 이런 식으로 발버둥을 친다면 나경원 의원은, 김어준 총수의 말을 빌자면, '보수의 꼬깔콘'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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