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작되었다. 아베 정부는 애초에 국제법상 문제가 없다더니 결국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따른 보복이라고 실토를 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 정부의 행동에 무척 불쾌해하고 있으며 화가 나 있다. 아베의 알량한 질투와 시기심 때문인지 일본 여당이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지를 얻기 위함인지는 우리의 알 바가 아니다. 그런 건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그들의 짓거리가 우리 국민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는 사실만이 우리의 관심거리다.


사람은 신체적인 위협이나 공격을 받을 때,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때, 감정이나 의견, 신념 등이 존중받지 못할 때,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아베 정부는 이 중에서 두 가지 원인을 확실하게 제공했다. 첫째는 우리가 받지 않아야 할 부당한 대우를 우리에게 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역사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감정과 신념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역사를 바로 알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불매 운동에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가세했다. 그만큼 화가 나는 일이라서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일본 제품 구매 운동을 벌이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감정을 죽이고 이성을 찾으라며 선비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 제품 구매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야 원래 그런 얼토당토 않은 짓 잘 하기로 유명한 족속들이니 이제 신경도 안 쓰인다. 열등감과 패배감에 찌들어 남들 하는 일에 비아냥대는 짓 말고는 다른 생각을 못하는 그들에게 뭘 바라겠는가? 오히려 조금 들끓는 분위기만 있으면 이성을 찾자고 짖어대는 소위 말하는 ‘먹물’들이야 말로 가증스럽기 짝은 없는 인간들이다. 그 인간들 중 몇몇이 쓴 글이다.


일본 정부에 대한 정당한 불만 표출은 당연하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지혜롭고 슬기로운 대처가 요구된다. 

- 한국일보, [사설] 확산되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 지혜롭게 움직이길


아쉽게도 감정만 앞선 불매 운동은 퇴행적이다. 정치와 외교가 이상 작동할 때 기업과 소비자 피해는 예상하기 어려웠던 곳으로 확산한다는 점만은 확고하다. 

- 중앙일보, [취재일기]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놓친 것들


우리 쪽에서 벌어지는 민간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감정 싸움만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서로의 감정을 누그러뜨린 뒤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 매일경제, [사설] 아베 도발에 맞보복보다는 부당성 알리는 게 먼저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있다. 이럴 때 ‘떡(외교적 명분)’ 하나 더 주고 망망대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감정만 앞세우다가는 판판이 당한다. 일본 전범 기업에 뺨따귀를 한 대 때려 잠시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마구잡이로 돌아오는 몰매는 어떻게 피할지 생각조차 않은 정부가 한심하다.

- 대구일보, [사설]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능사는 아니다


지금 민간에서의 반(反)일본 정서는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불매운동 등은 정부 차원의 대응을 지켜보고 해도 늦지 않다. 굳이 하더라도 요란을 떨 일은 결코 아닐 듯하다. 소리 없는 준비로 맞서 바라는 목표를 이루는 그런 지혜로운 행동 변화가 더욱 필요한 때다.

- 매일신문, [사설] 경제 보복 맞선 일제 불매운동, 과연 바람직한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아주 그럴싸한 얘기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같잖은 말들이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대처가 필요하다는 말은 불매 운동이 어리석고 아둔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아예 대놓고 '퇴행적'이라고 평가한 기사가 있는가 하면 전범 기업 뺨따귀 한 대 때려 기분은 좋아도 감정싸움으로 가면 판판히 당하고 몰매를 맞는다고 걱정한다.


정말 가증스럽다. "못 배운 국민들아, 이성적으로 해결해야지 불매 운동 같은 감정적인 것에 엮이면 되겠냐"는 투다. 언제는 국민 정서가 어쩌니 저쩌니 하던 인간들이 이럴 때는 감정적이면 안된다면서 선비질을 한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정서라서 그런 건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다. 이런 같잖지도 않은 말을 언론인이라는 이유로 염치도 없이 던지고 있는 모양이 가증스러운 것이다. 그들의 가증스러운 선비질에 대거리를 한번 해보자.


분노는 열등함의 상징인가?

분노는 감정이다. 감정은 관계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감정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명확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어떤 상황이 되면 마음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선비질에 바쁜 그들에게서 그런 통찰은 찾기 어렵다. 감정은 무조건 열등한 것으로 전제하고 말을 한다. 감정이 이성보다 열등하다는 명제는 통속적인 관념일 뿐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설사 이성이 감정보다 우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분노하면 안 되는 이유가 될 수도 없다. 분노는 애초에 정신의 반응이기 때문에 하고 안 하고 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말이다.


화가 나지 않았을 때 화를 내는 건 비정상이지만 화가 났을 때 화를 내는 건 심각하게 정상이다. 왜 정상적인 반응을 두고 열등하니 비이성적이니 훈계를 하는가? 프란치스코 교황도 "내 친구가 나의 엄마를 욕했다면 그는 한 대 얻어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교황까지도 이렇게 말할진대, 언론인들은 죄다 철학자이고 깨달은 자들인가? 젠 척 그만하라. 비인간적이다.


분노의 결과는 항상 불행한가?

그들의 선비질은 분노가 앞섰을 때 발생할 결과에 대한 염려일 수도 있다. 분노가 공격성을 갖는다는 것은 오래된 통찰이니 걱정할 만도 하다. 하긴 스피노자도 그랬다. 분노는 증오하는 사람에게 해를 가하려는 욕망을 일으킨다고. 하지만 그 잘난 이성이 항상 해피엔딩만 끌어내는 것이 아니듯이 분노의 결과가 항상 새드엔딩은 아니다. 그런 가능성들은 배제하고 "이성=행복", "분노=불행"이라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니 지금 상황이 걱정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 


기분이 무척 나쁜 것은, 일반 국민들은 감정에 치우쳐면 불행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견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국민들이 생각 없이 분노에 매몰되어 사고를 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고가 벌어졌는가? 누가 일본 대사관에 불을 질렀는가, 유니클로 수원 망포점 피팅룸에 똥을 싸놨는가? 갑질하는 회사들 불매 운동할 때 국내 시장 파탄난다고 말 한적 없는 자들이 왜 일본 제품 불매 운동 한다니까 감정적이라며 선비질인지 알 수가 없다.


대통령 같지도 않은 대통령 물러나라고 외치기 위해 수 십, 수백만 명이 한 곳에 모였었다. 그 때 모인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분노가 가득했다. 하지만 청와대를 향해 돌팔매를 한 사람도, 경찰을 후려 팬 사람도, 화염병을 던진 사람도 없었다. 그 민중들과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하는 민중들은 같은 사람들이다. 무엇을 근거로 그들의 분노가 불행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예상하는가? 그것이 그들의 선민의식인지 엘리트 의식인지 아니면 선비정신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민중들을 감정에 휘둘리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보는 거만한 자세는 버려라. 주요 38개국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4년 연속으로 최하위를 기록한 주제에 어디서 민중들을 깔보는가?



글로벌 호구가 되라고?

사태의 시작으로 돌아가 보자.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은 아베 정부다. 엄연한 규칙이 존재하는 국가 사이의 거래에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불만을 쏟아부었다. 이것이야말로 감정적이다. 물론 일본이 감정으로 나와도 우리는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편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이번 일은 어른과 아이 사이의 다툼이 아니다. 어른이니까 이해하고 아이니까 참아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국가 간의 이해가 걸린 일인 데다가 역사적 올바름에 대한 민족의 신념을 침해당하는 일이다. 이성적 판단, 외교적 명분, '5000년 이웃 국가'(동아일보 사설에서 나온 말. 참고로 일본에 한반도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한 때가 기원전 3세기다. 이제는 일본과의 교류 역사도 날조하는 지경이다.) 같은 말로 좋게 좋게 넘어가는 것은 국민들의 자존감이 허락하지 않는다.


큰 맘 먹고, 자존감 잃어가면서 그렇게 했다고 하자. 많이 배우셔서 선비질에 도가 튼 언론인들 말처럼 하면 그 끝은 무조건 우리의 승리가 될까?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지 마시라. 이건 아베 정부가 건 싸움이고, 이겨야 할 이유와 명분은 충분하다.) 사실, 위에서 예를 든 사설과 기사만 봐도 별다른 대책이 없고 끝이 좋으리라는 보장 따위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다. 비슷한 뉘앙스의 기사들을 봐도 비슷비슷하다. 그냥 시비 걸리기 싫고, 먹물 먹은 티는 내고는 싶어서 두리뭉실하게 써놓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얘기다. 할 말이 없으면 그냥 쓰지 않으면 된다. 명확한 대안과 대책도 없으면서 왜 국가와 국민들을 글로벌 호구로 만들려고 하는가?


게임 이론이 지배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감정적인 시비를 걸어와도 점잖게 선비질 하고 있으란 말인가? 지금 상황이 손자가 할아버지 수염 잡고 노는 걸로 보이는가? 아무리 뭔가를 써야 밥을 먹는 직업이라지만 너무 무책임하다. 시비를 걸어오면 일단 눈이라도 부라리며 대응을 해야 맞다. 주먹을 휘두를지 말지는 나중에 생각하더라도 일단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다는 용기는 보여줘야 한다. 게임 이론에 등장하는 전략 중에 가장 뛰어난 전략은 '팃포탯(Tit-for-Tat)'이다. 팃포탯 전략의 큰 줄기는 간단하다. 협력과 신뢰를 하지만 배반에 대해서는 즉각 보복하는 것이다. 이성이나 명분, 이웃나라와의 우애 따위를 우선하는 전략을 쓰다간 글로벌 호구임을 인증하는 것 말고 남는 게 없다. 


거꾸로 생각하면 아베 정부가 지금과 같은 허튼짓을 하는 것도 우리를 호구로 봤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호구가 맞다면 호구 역할을 해주면 된다.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 국민들의 태도를 보면 우리는 확실히 호구가 아니다. 호구이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호구가 아닌데 호구로 봤으니 화를 내는 것은 너무 당연한 얘기가 된다. 그래서 화내는 게 뭐가 잘못인가? 언론인들 선비정신 받들려고 국가와 국민이 호구가 되어야 하는가? 난 절대 그렇게 못하겠다.


일부 언론인들이 나서서 국민들의 분노를 왜 지레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걱정하는 만큼 국민들이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는 일은 없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안 믿을지 몰라도 우리 국민들은 이미 언론인들이 선비질 해가면서 훈계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교양과 양식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해결 방안도 걱정할 필요 없다. 그것은 국가가 담당하고 있다. 그럴려고 국가라는 합의체가 있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의 본질은 국가 정체성의 주체인 국민들이 특정한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 감정을 국가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정책에 반영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번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두고 몇몇 언론인들이 해대는 선비질은 국가와 국민과의 관계에 대한 통찰도 없이 민중을 내려보면서 잘난 척, 우월한 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선비질이라는 말도 그들에게는 과분할지도 모르겠다. 100여 년 전 우리 선비님들은 나라가 넘어가는 꼴을 보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수치심과 억울함과 분노를 토해내셨다. 선비질을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민중들의 정당하고 선량한 분노를 보면서 어리석고 우매하다고 혀나 끌끌 차고 있는 언론인들은 그 옛날 선비님들의 갓끈 한 올 만도 못하다.

Posted by 김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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