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설익은 밥에 손을 댄 나경원 의원

김성열 2019. 3. 1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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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2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이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원색적인 표현을 아끼지 않고 현정부를 맹비난 했다. 여당 의원들이 강하게 항의했지만 나경원 의원은 의연한 표정과 목소리를 잃지 않았다. 그렇게 연설을 마친 나경원 의원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할 말을 다 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에 격앙된 듯 보였다.


나경원 의원이 투사와 같은 모습을 보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최근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30% 대를 회복했다. 늘 그렇듯이 자유한국당이 뭔가를 잘해서 지지율이 오르지는 않았다. 정부와 여당이 이렇다 할 업적을 내지 못하는 바람에 반사이익을 챙긴 것에 가깝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정부와 집권여당의 무능을 더욱 강조하고 비판하여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데 힘을 쏟는 게 당연하다. 여의도 정치판의 생리라면 생리다. 아마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이었더라도 이런 기회를 넘겨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나경원 의원은 자신의 욕심을 얹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이럴 때 정치 투사로, 강력한 정치 리더로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아쉬운 점은 나경원 의원이 이미지를 각인시키고자 한 대상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나경원 의원이 이목을 끌고 싶어했던 대상은 연설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좌파 독재, 김정은 수석대변인, 오만과 독선 같은 얘기는 특정 세력이 좋아할 만한 단어이지 일반 국민들이 공감할 만한 표현이 결코 아니다. 


나경원 의원이 이런 생각을 못했을 리는 없다.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오르긴 했다지만 30%다. 아직은 자신들에게 지지를 보내지 않는 국민이 70%나 된다. 중도층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격한 표현을 쓴다고 해서 중도층이 자유한국당으로 몰린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격한 표현 뒤에 있을 후폭풍도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얻는 것과 잃는 것이 확실하게 계산되지 않을 때는 인내를 갖고 지켜보는게 답이다.



그런데 나경원 의원은 확실하게 계산이 안되는 이런 상황에서 왜 답을 써버린 것일까? 다른 게 없다. 급했던 것이다. 자신이 가진 정치인으로서의 욕망이나 바람을 빨리 달성하고 싶은 마음에 안달복달 한 것이다. 여기에 나경원 의원 본인이 처한 상황도 급한 결정에 한몫 했을 것이다. 당 지지율이 언제 어떻게 될 지도 모르고, 자신이 평생 원내대표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부 경쟁자가 언제 나타날 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마음은 더 급해지고 결국은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식의  도박을 한 것이다.


나경원 의원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주인공인 인력거꾼 김첨지의 마누라는 병으로 앓다가 결국에는 죽고 만다. 그녀가 앓게 된 이유는 열흘 전에 조밥을 먹고 체했기 때문이다. 어찌된 일인지는 소설에서 이렇게 나온다.


김첨지의 말에 의지하면 그 오라질 년이 천방지축으로 냄비에 대고 끓였다.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달지 않아 채 익지도 않은 것을 그 오라질 년이 숟가락은 고만두고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이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 듯이 처박질 하더니만 그날 저녁부터 가슴이 땡긴다, 배가 켕긴다고 눈을 흡뜨고 지랄병을 하였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설익은 것을 먹어서는 안된다. 그랬다가는 허기는 달랠 수 있을 지 몰라도 탈이 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운이 좋아서, 위장이 튼튼해서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탈이 났을 때는 허겁지겁 허기를 채운 대가를 제대로 치뤄야 한다. 나경원 의원의 상황이 이와 꼭 같다. 당장 눈 앞의 30%를 챙기 것으로 허기를 달랠 수는 있을 지 몰라도 나머지를 잃어버리는 탈이 날 수도 있다. 나경원 의원의 정치적 욕망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정치판에서 큰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잠깐의 굶주림은 참길 권한다. 그런 자잘한 인내도 없는 사람을 큰 정치인으로 만들어주려는 국민들은 기껏해야 30% 정도 밖에 안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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