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그들은 지만원의 말을 정말 믿을까?

김성열 2019. 2. 21.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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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의 활약이 한겨울을 후끈 달구고 있다. 평소 하던 얘기를 좀 더 세게 하는 것 뿐이니 굳이 관심 갖지 않는게 정신건강에 좋을테지만, 그가 평소 하던 얘기가 뭔지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간만에 맛보는 신선함일 수도 있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이 북한의 특수부대에 의한 게릴라전이었다는 산뜻한 주장이야말로 압권이다. 사진에 찍혔던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을 북한 사진에서 찾았다면서, 그들이 바로 광주에 투입되었던 북한 특수부대라는 게 지만원의 주장이다. 지만원과 그의 의견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이 '광수 찾기'는 600명 이상의 북한 특수부대원을 찾아내는 개가를 올렸다. 안그래도 살기 퍽퍽한 세상에 이렇게 큰 웃음을 주니 경멸하기는 뭣하고 그저 기가 찰 뿐이다.


지만원이 북한군 투입설을 주장하는 근거는 명쾌하다. 3D 입체 분석 시스템을 통해 당시 사진 속의 인물과 북한 사람의 얼굴을 비교 분석했더니 같은 사람으로 판명되었다는 것이다. 사진 한 장으로 3D 입체 분석을 했다는 것이 믿기진 않지만,  어쟀든 지만원은 그렇다고 한다. 눈, 코, 입 달린 것 말고는 별로 닮지도 않아 보이는 것은 내 눈이 첨단 과학 기술을 전혀 쫓아가지 못함이 분명하다.


이것만이 아니다. 12년 간의 과학적 분석 결과,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사진 속의 사람들 중에 '궁뎅이랑 허리'가 북한군 몸매인 사람이 있다고 한다. 어떤 몽둥이를 든 사람은 자세가 딱 북한군이라고 한다. 또, 총을 거꾸로 멘 사람이 있는데, 북한군은 총을 거꾸로 메기 때문에 그 사람도 북한군이 확실하다고 한다. (지만원 박사의 말대로라면 군시절 동안 틈만 나면 총을 거꾸로 메고 다녔던 나는 대한민국 육군에 복무한 것이 아니라 조선인민군 전사였던 것이다.)


지만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피식 웃음이 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이걸 믿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지만원이 운영하는 사이트인 '시스템클럽'에 가보면 실소가 가신다.  지만원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진지하다. 그리고 확신에 가득차 있으며,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들에게 핍박박는 자신들(자칭 500만야전군)의 신세에 대한 답답함과 분노가 넘쳐 흐른다.  



확증편향

그들의 진지함과 확신과 답답함과 분노를 보노라면 그들이 정말로 지만원의 '광수'를 믿고 있는 것 같다. 일반적인 수준의 지식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저 코웃음 치고 넘어갈 얘기를 절대 진리인듯 믿는 사람들의 속내는 뭘까? 먼저 생각나는 것은 확증편향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런 말도 안되는 논리도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을 확증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꼴보기 싫은 진보 세력', '보기만 해도 열받는 촛불 대통령', '자기들만 민주주의 화신인 듯 구는 전라도 사람들' 따위의 생각과 신념을 더욱 단단하게 입증하고 싶은 마당에 진실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공고하게 해줄 수 있다면 일단 받아들이고 보는 것이다.


인정투쟁

지만원을 추종하는 세력이 대부분 나이가 제법 있는 층임을 감안하면 일종의 인정투쟁 양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인정투쟁은 별 게 아니다.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 자신의 존재가치를 평가받지 못하면 그것을 보상받기 위해 투쟁을 하는 것이다. 세상은 늙은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르신'들이 갖고 있던 의식이나 관념들은 낡은 것들이 되고, 그들의 숱한 경험조차도 구닥다리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철 지난 그런 얘기는 날이 갈수록 인정받기가 어려워진다. 한마디로 존재의 사회적 가치가 급격히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심은 그들을 세상의 중심을 이루는 것들의 반대편에 서도록 만든다.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인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과거와 경험들이 여전히 세상의 중심이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들을 '낡고 오래된 것'으로 만든 것들을 부정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저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여전히 정당하고 옳다고 강력하게 말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들 존재가치를 전처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이 독재자의 딸을 괜히 대통령으로 뽑아준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살아온 시절이 부정받지 않고 여전히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란'으로 받아들였던 사태가 '민주화운동'이 되어버리면 자신들에게 주입되었던 관념과 의식 체계가 부정당하는 것이다. 자신들을 바꾸지 않은 채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벌어진 일은 결코 민주화운동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집단사고

개인의 이런 생각들은 집단을 형성하면서 더욱 공고해진다. 그리고 하나의 결을 가진 집단사고(集團思考)로 발전한다. 집단사고의 개념을 만든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에 의하면 집단사고는 여덟 가지 증상을 갖는다. 그 여덟 가지 증상은 세 가지 분류로 압축할 수 있다. 그 세 가지는 1) 집단은 잘못된 결정을 하지 않으며 도덕적이라고 믿는 '집단 능력에 대한 과신' 2) 잘못된 결정을 합리화하고 다른 집단을 획일적으로 폄하하는 '집단의 폐쇄성', 3) 집단의 결정에 동조를 강요하거나 스스로 반대 의사를 자제하고 모든 집단 구성원들이 같은 생각이어야 한다고 믿으며 반대 의사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사전에 차단하는 '획일성에의 압력'이다.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게시판을 보면 이러한 집단사고의 전형이 한 눈에 보인다. 지만원의 '광수찾기'에 반문은 갖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으며 그렇게 나온 결과를 맹신한다. 자신들이야말로 정의와 도덕심으로 뭉친 사람들이며 자신들 이외의 집단이나 사람은 조금만 마음에 안들면 바로 빨갱이라고 낙인 찍어버린다. 누군가 나서서 무언가를 성토하면 잠자코 있으라며 입을 막아버리고 지만원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서로를 인정하고 자신들에 대한 외부의 반론이나 의견은 거의 공유하지 않는다.


진실과 거짓의 싸움을 떠나서 지만원을 추종하는 집단의 응집력은 여타 커뮤니티 사이트 수준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마치 파시즘의 징후를 보는 듯한 느낌까지 준다. 어빙 재니스는 집단의 응집력이 집단사고로 이어지기 위해서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집단이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집단이 불리한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하는 상황이다. 집단이 고립된 경우 체계적인 비판이나 검증 없이 문제의 해답을 찾아야 하며, 집단이 불리한 상황에서는 구성원들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 의사 결정 과정이 최소화된다. 그 결과는 뻔하다. 증명도 되지 않고 보편성도 얻을 수 없는 결론이 툭 튀어나온다. 



그와 그들은 '광수'를 믿는가?

이렇게 왜 그들이 '광수' 따위의 턱 없는 것을 믿는지 살펴보다보니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굳이 광수를 믿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 데 굳이 그것이 진실일 필요는 없다. 그저 나의 확신을 입증해주는 것이면 그만이다. 나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도 굳이 사실이 필요하지 않다. 내가 인정 받고 싶은 관념이나 의식, 경험 따위를 보증해줄 수만 있으면 거짓이어도 상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집단사고 차원에서도 진실과 거짓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집단은 단지 나의 견해나 관념을 단단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뿐이다. 집단이라고 해서 진실과 거짓을 보증하지도 않을 뿐더러 당사자 역시 '옳은 판단'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판단을 집단 차원에서 확인하고 싶은 것 뿐이다.


믿거나 믿지 않거나의 문제가 아니라면 굳이 나서서 믿을 필요가 없다. 게다가 정신 제대로 박힌 정상인이라면 비슷한 얼굴찾기 놀이일 뿐인 '광수' 따위의 허황된 발상을 믿을 리 없다. 단언컨데, 지만원의 '광수' 주장은 지만원도 자신도 믿지 않고 그의 주장을 추종하는 자들도 믿지 않는다. 지만원은 자신의 주장을 떠받드는 사람들이 있으니 계속 말하는 것이고, 그의 주장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을 지만원이 해주니 그의 주장을 치켜 세우는 것 뿐이다. 


선동은 진실과 거짓의 프레임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나쁜 감정의 구멍을 찾아서 그 구멍을 딴딴하게 메우면 그만이다. 히틀러 밑에서 일했던 선동의 대가인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이렇게 말했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지만원은 몇몇 사람들이 가진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이용해 거짓을 퍼뜨리는 값싼 선동가다. 그의 말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열등감을 싸구려 선동으로 위안 받으려는 비겁한 자들이다. 역사에서 값싼 선동가와 비겁한 자들이 결국 승리하는 일은 없었다. 지만원과 그의 주장을 따르는 자들의 미래도 끝내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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