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어리고 소소한 생각

이언주 의원 '감정정치'의 길을 가다

김성열 2018. 12. 1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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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윤리와 책임윤리

100년 전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강연을 통해 정치인은 신념윤리(심정윤리)와 책임윤리의 두 가지 자질을 조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념윤리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의에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자질을 말한다. 책임윤리는 자신의 결정으로 인한 결과에 책임을 지는 자질이다. 기본적으로 막스 베버는 이 둘을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지만, 결국 정치가는 이 둘의 조화를 끌어내야 한다고 했다.


막스 베버가 뮌휀대학에서 강연을 한 지 100년이 지났지만 그의 통찰은 여전히 빛이 난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그가 말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잣대로 얼마든지 가늠이 가능하니 말이다. 일례로 야당인 자유한국당(이라는 정치인들의 집합체)이 여당과 청와대의 정책을 일단 발목부터 잡고 보는 것은 신념윤리가 크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신념윤리에 집중하는 정치인은 의사 결정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 관심이 없다. 즉,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의만 관철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남한과 북한 사이에 평화 기류가 흘러도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를 고수하는 것이고 복지예산, 일자리 예산, 남북경협예산을 깎자고 달려드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현 정부와 여당이 하는 일이 합리적이든 옳든 어쨌든 상관이 없다. 일단 진보와 복지와 북한은 무조건 나쁘다는 신념윤리에 충실하는 것이 그들의 정치적 행위의 주된 근거로 작동한다.


그럴 수 있다. 지금의 여당이 야당이었을 때, 그들도 어느정도는 그랬다. 지금까지 그렇게들 연명해 왔는데 갑자기 바뀌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죽는다는데, 아무리 정치인들이 미운들 인간 존재의 불꽃이 사그러드는 것을 기뻐하면서까지 정치의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야멸찬 일이다. 그나마 정치적 결정에 있어 그 결과에 신경을 쓰고,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조화를 고민하는 정치인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에 희망을 갖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와중에 막스 베버가 예상하지 못한 '정치적 자질'과 그러한 정치적 자질을 두드러지게 드러내 보이는 정치인이 눈에 띈다. 그 정치인의 정치적 행위를 딱 잘라서 정치적 신념이나 정치적 책임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직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현대 정치의 '현인'인 막스 베버의 통찰로도 해석되지 않는 그 정치인,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의 정치적 자질을 들여다본다.


이언주 의원의 신념은 어떻게 변했을까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은 2012년 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의 전략공천을 통해 경기도 광명시 을 선거구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같은 해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위원장 선거에 참가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현재 대통령이자 당시 당대표였던 문재인과는 거리가 있었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체제에서는 김종인계로 분류되기도 했다.


2017년 4월, 당시 대선주자였던 안철수에 대한 공개지지를 선언하면서 국민의당에 입당하였고, 지금은 국민의당과 바른당의 통합체인 바른미래당에 속해 있다. 그리고 2018년이 저물어 가는 현재는 보수야당인 자유한국당 입당이 예상되는 유력 국회의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인이 신념이나 유불리를 따라 자리를 옮기는 것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그렇게 비판할 일도 아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이 자신의 신념과 거리가 멀다면 떠날 수도 있다. 또, 신념이 바뀌어도 자리는 옮길 수 있다. 자유한국당의 김성태 원내대표만 보아도 정치적 신념의 일관성이란 모호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성태 의원은 노동운동가 출신이지만 그 대척점에 있는 자유한국당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당이 만든 대통령을 탄핵할 때 당을 떠나 탄핵을 주동했고 지금은 다시 복귀를 해 집권 여당과 정부를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이언주 의원도 신념이 바뀐 그런 케이스라고 보면 그만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김성태 의원과 확실히 다른 점이 있다. 김성태 의원은 자신이 처한 상황의 유불리를 따져서 표면상 신념을 수정했다. 현 정부와 여당의 정치적 기조를 반대한다는 기본적인 신념에는 변함이 없을 지도 모른다. 김성태 의원이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다가 다시 슬그머니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 것은 상황의 유불리가 크게 고려된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언주 의원은 안철수 지지를 선언 하면서 국민의당으로 입당한 일 말고는 유불리와 이해득실에 따라 신념을 바꾼 일은 드물어 보인다. 이언주 의원이 국민의당에 합류하던 당시는 안철수가 대권주자로서 지지율이 가장 높았을 즈음이다. 이언주 의원 입장에서 될만한 후보 쫓아가는 것이 분명 합리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이언주 의원의 정치적 행동들의 대부분은 딱히 상황을 호전 시키지 못했다. 


현 정부와 대통령을 격하게 디스하는 것을 두고 자유한국당 쪽에서 국회의원 하고 싶어서 포석을 깐다고들 얘기는 한다. 세간의 비평에 따르면 이제 광명 을에서는 글렀다고 보는게 맞긴 하지만 부산 영도는 처음부터 가능성을 키워가야 하기 때문에 더 불리하면 불리했지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 영도에 간다고 김무성 의원이 무조건 밀어준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정부와 대통령 뒷담화만 세게 하는 것으로 표를 먹겠다고 하면 영도의 투표권자들이 오히려 기분 나빠할 일이다.



감정 충만한 정치 행위

또, 신념윤리에 의존한 정치적 행위의 결과에서도 차이가 있다. 김성태 의원의 경우 反복지, 反진보, 反정부정책, 反북한과 같은 신념윤리에 의존하긴 하지만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할테지만...) 결국 정치적 결과를 이끌어낸다. 김성태 의원과 그가 몸담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입으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망할 것처럼 온몸으로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 그런 정치적 행위들은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 거부, 유치원3법 단독 발의, 판문점선언 비준 거부, 여당과의 예산공조 같은 정치적 결과를 끌어낸다.


이언주 의원은 점잖은 편이라 온몸으로 훼를 치는 경우는 없지만 정치적 언어를 수 없이 내놓는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행위들은 정치적 결과를 도출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낙연 국무총리 내정자는 하자 있는 물건", "여당 선대본부장은 북한의 김정은" 같은 발언에서는 정치적 신념 대신 미움 가득한 비꼬기와 비아냥거림만 발견할 수 있다. 


민간업체나 민간인이 만드는 이니굿즈에 대해 "국가가 혈세를 써서 이런 걸 왜 만드냐"고 한다거나, 대기업이 주최하는 축제를 두고 "나라 운명이 풍전등화인 상황에서 막대한 혈세를 들여 불꽃축제하면서 흥청망청 한다"고 한 것은 미움의 감정이 앞선 나머지 사실 관계는 접어두고 일단 물어뜯기부터 하고 본 케이스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언주 의원의 언행은 정치적 결과를 염두한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그냥 욕이다.


압권은 "외교부 장관은 국방을 잘 아는 남자가 해야한다"라는 말이다. 이 말는 장경화 외교부 장관 청문회 때의 발언이다. 묘하게도 그 옛날 어떤 정치인이 했던 "대학 나온 사람이 대통령 돼야한다"라는 명대사와 겹친다. 당시 이 말을 했던 전여옥씨는 과연 신념에 근거해서 이런 말을 했을까? 아니면 보편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충분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까? 당연히 아니다. 그 말은 대통령에 대한 미움의 감정에서 나온 조소와 경멸의 표현일뿐이었다.


이언주 의원의 "외교부 장관은 국방을 잘 아는 남자가 해야한다"는 말도 전여옥씨의 말과 마찬가지다. 논리적 근거도 희박하고 강한 신념이 내재되어 있지도 않다. 그저 자신이 싫어하고 미워하고 시기해마지 않는 현 정부가 내정한 장관 후보자기 때문에 증오에 가득찬 말을 내지른 것이다.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남자였다면 이언주 의원이 순순히 동의해줬을지를 생각하면 답은 금방 나온다.


반감, 미움, 시기 그리고 우월감

이언주 의원의 발언들을 보면 어느 누구, 그리고 그 어느 누군가를 추종하고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과 미움이 넘쳐나 보인다. 짐작컨데 서울대, 변호사, 대기업 최연소 임원을 거쳐 국회의원까지 꽃길을 걸어온, 그리고 앞으로 꽃길만 걸어가야할 그에게 좌절과 굴욕을 안겨준 일 때문일 것이다. 


이언주 의원은 초선 때부터 원내대변인, 정책위부의장 등을 맡을 정도로 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2016년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위원장 선거에서 '친문계'인 전해철에 패했다. 이언주 의원은 비주류의 무력감을 느꼈다고 회고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 속에서는 좌절과 굴욕의 원인을 제공한 대상을 싫어하고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생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때는 경제라도 좋았다", "박정희는 천재적 인물", "탄핵은 가능한 한 벌어지지 않았어야 할 일이었다. 그때 '잘못됐다'고 생각했을 때 침묵을 지키는 게 얼마나 이 나라의 비극을 초래하게 되는가를 처절하게 느꼈다" 같은 말로 이언주 의원의 '정치적 신념'이 원래는 보수(여기서는 원래의 보수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였음을 짐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원래 보수였으면 처음부터 그에 맞는 당을 선택하면 됐을 일이다. 


만약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민주당을 택했었다면 적어도 탈당해서는 안철수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맞는 당으로 갔으면 됐다. 위의 말들은 신념이 아니라 감정이 상해서 나오는 말이다. 아주 잘 봐줘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기 위한 필요 때문에 한 말이라는 정치적 포장 정도만 씌울 수 있다. 앞으로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면서 미운 대상에 대한 욕도 실컷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여기에 더해 그의 엘리트로서의 우월감 또한 정치적 행위의 동기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학교 급식 조리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하자 "그 아줌마든이 뭔데? 그냥 동네 아줌마거든요...(중략)...그냥 어디 간호조무사보다도 더 못한 그냥 요양사 정도라고 보시면 되요...(중략)... 미친 놈들이야, 완전히..."라고 발언한 것은 유명하다. 이 말에서는 비정규직 조리사 뿐만 아니라 간호조무사, 요양사까지 모두 열등한 직업인으로 생각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어떻게 보면 생산성이 낮은 하급 공무원직은 말씀하신대로 추천이나 할당도 방법이다"이라는 말도 했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위한 도구로 보고 있음이 너무 표시가 나서 변명조차 해주기 어려울 정도다. 엘리트 의식에 기반한 싸구려 우월감이라는 감정 없이 이런 말을 할 사람은 흔치 않다.



이렇듯 이언주 의원은 정치적 신념이나 정치적 책임감과는 거리가 먼, 막스 베버는 생각도 못했을 '감정윤리'에 근거한 정치 행위를 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정치 행위'는 이언주 의원이 국회의원직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표면상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고, 덕분에 그렇게 불러주는 것 뿐이다. 만약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위에 나온 말들을 쏟아냈다면 피해의식과 우월감에 찌든 것 아니냐는 염려 또는 비판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언주 의원의 정치적 운명이 어떻게 풀려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구나 그는 '감정윤리'에 의존한 '감정정치'라는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지금에서는 '감정윤리'가 정치적 자질로서 먹힐지 않을지는 오직 이언주 의원만이 결과를 보여줄 수 있으며 그에게만 기대할 수 있다. 고독하고 쓸쓸한 그에게 건투를 빌어줌과 더불어, 될 수 있으면 감정윤리가 먹히지 않는 정치판을 기대한다고 조심스레 말해본다. 안그래도 복잡하고 시끄러운 정치판인데 개인의 감정까지 섞어가면서 정치하는 꼴을 본다면 정치의 수혜자인 나 같은 사람은 퍽이나 감정 상할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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