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연애

배우자에 대한 사랑은 언제 마침표를 찍을까

김성열 2014. 11. 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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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용암처럼 뜨겁게 타오르던 사랑도 언젠가는 식는다. 우리는 식어버린 사랑 앞에서 당황한다. 그 뜨거움을 믿고 다짐하고 약속한 '영원한 사랑'이 식은 것을 확인하는 순간 사랑을 주는 사람, 사랑을 받는 사람 둘 다 당황스럽다. 하지만 식어버린 사랑의 감정의 불길을 다시 일으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습관처럼 만나고 습관처럼 서로를 곁에 둔다. 사랑이 습관이 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가 습관이 된다. 하지만 습관은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는다. 그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면 헤어짐을 택한다. 


하지만 사랑을 전제로 결혼을 한 부부는 쉽게 헤어짐을 택하지 못한다. 사랑이 식었다는 이유로 이혼을 감행하는 것은 보편적인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있어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아직 사랑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사랑하니까 함께 부부로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부'는 사회적 관계의 한 형태일 뿐이다. 부부라고 해서 사랑의 감정이 더 돈독한 것은 아니며 사랑의 식어감을 피할 길도 없다. 


그런데 사랑이 식은 것인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잘 알 수가 없다. 배우자가 외도를 한다는 상상을 해보자. 분노가 치밀어오를 것이다. 그것을 배경으로 아직 배우자에게 마음이 있고 사랑을 느끼는 것처럼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랑이 식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뭔가 떨떠름하다. 외도하는 배우자에 대해서 느끼는 분노가 무참히 짓밟힌 사랑 때문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애착심의 훼손, 믿음에 대한 배신, 부도덕과 비윤리에 대해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분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부 사이에 사랑이 식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방법은 하나다. 다음 세상에서 다시 결혼을 할 때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할 마음이 없다면 더 이상 사랑의 감정은 없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단순명쾌하게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랑의 속성 중에 확실한 것 하나는 사랑하는 대상과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다. 물을 부어도 샐 틈이 없을 정도로 꼭 껴안고 함께 하고픈 것이 사랑의 감정이다. 그래서 결혼을 하는 커플도 여전히 많다. 그런데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면 그것이야 말로 사랑의 마침표를 찍었다고 해야지 않을까?


사랑의 감정이 사라진 부부의 관계는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부라는 관계가 끊어지지는 않는다. 사랑이 없이도 얼마든지 결혼할 수 있고 얼마든지 부부로서 살아갈 수 있다. 함께 살다보면 정이 쌓이고 애착이 생긴다. 그 정도의 좋은 감정만으로도 부부로서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게다가 정이나 애착이 없어도 얼마든지 부부로 살 수 있다. 도종환 시인의 <가구>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내와 나는 가구처럼 자기 자리에 / 놓여 있다 장롱이 그렇듯이 / 오래 묵은 습관들을 담은 채 / 각자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 일을 하곤 한다". 부부라는 관계를 지속시키는 것은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관계의 유지가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그것은 함께 있으면서 만들어진 정(情)이라는 친밀감과 애착이라는 정서적 유대감에 지나지 않을 지 모른다. 물론 그렇게라도 사랑을 믿는다면 참 좋은 일이다. 정말 겁이 나는 것은 사랑은 고사하고 정과 애착마저도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 슬퍼할 것이 아니라 사랑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는 것이 사랑이 식어버린 부부들이 해야할 일이 아닌가 싶다. 돈, 자녀, 풍족한 삶, 편안한 생활로 사랑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사랑했던 사람에게 무례한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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