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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기영 지음, 문학사상사, 1994)

김성열 2014. 9. 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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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기영 지음, 문학사상사, 1994)


그의 문장은 멋스럽지만 가식이 없다. 넘실거리는 생생함이 있다. 잘 익은 나락, 고즈넉한 오후의 부락 어귀, 달빛이 쨍한 여름밤 밭둑, 비늘처럼 반짝이는 개천의 풍경을 열두폭 병풍처럼 눈 앞에 훤히 펼친다. 그런 글재주로 농촌의 안락함과 따스함만을 그렸다해도 아주 좋은 글이 되었겠지만 <고향>은 그렇지 않다. 그 풍경 속에서 움싯거리는 사람들은 결코 서정의 주인공들이 아니다. 기아에 전복되어버린 노동의 가치와 극복을 선택할 수 없는 환난과 비참, 그 안에서 아둥거리는 힘 없는 사람들의 지난한 삶, 이론과 지성의 무력함에 힘이 빠진 자발적 선각자들의 절망과 갈등이 풍경의 속살이다.


자본이 득세하면서 가난과 노동은 대를 잇는 순환의 출발점에 선다. 토지의 신성함과 노동의 거짓없음에 길들여진 농민은 자신들의 무력함을 깨닫지도 못한 채 피폐한 삶을 맞닥뜨린다. '이론과 실천의 합치'를 꿈꾸던 몇몇 인텔리들이 용을 써보지만 관념의 허무함에 자괴감만 더할 뿐이다. 마침내 못되먹은 마름의 가정사를 들춰내서 협박해 농민에게 작은 승리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외치던 승리가 아니었다. 


승리를 도모하며 앞장 섰던 활동가는 마름의 불미한 가정사의 주인공인 여성(마름의 딸)을 마름을 협박하는 수단으로 삼는가 하면 그녀에게서 돈을 얻어내 농민들의 마음을 다잡는다. 고육지책이라는 핑계를 대지만 농민들이 겪는(겪을) 악순환을 끊어낼 방법은 못된다. 악순환의 고리에는 흠집도 못낸다.


마름의 딸은 물욕에 사로잡힌 아버지를 저버리고 노동자가 되어 농민들의 편에 선다. 하지만 그것은 애욕에 사로잡힌 자신의 죄의식을 극복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이 역시 가난과 기아의 대물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정작 농민들조차 일시적인 승리를 위해 아무 방도에나 맞장구를 치며 이리저리 끌린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에게 좋은 쪽이면 그만이다. 이론이니 실천이니 하는 것들은 당장 오늘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판국에서 아무 짝에 소용 없는 것들이다.


그들은 모두 무력하다. 길고 긴 이야기의 중심에 무력함이 도사리고 있다. 개선의 희망이나 혁명의 기치 따위는 없다. 책의 표지에 굵게 새겨있는 '일제 치하 피폐한 농촌을 떨치고 있어선 농민들의 함성!'은 과장이다. 비록 그것이 있다한들 힘이 없는 저네들끼리의 외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작품이 리얼리즘의 승리, 리얼리즘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어쩌면 그 함성들의 무력함을 있는 그대로 내보였기 때문일지 모른다. 


물질과 물질을 기반으로 한 권력의 강대함 앞에서 관념은 허무하고 이성은 무력하다. 한걸음씩 가야하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느리다. 그렇게 너무 느려 따라잡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위로하고 변명하고 패배의 의의를 찾는다. 부(가난), 노동이 되물림 되는 지금의 세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민초들은 여전히 무력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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