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삶과 사람

단언컨데 당신은 부자가 될 수 없다

김성열 2014. 7. 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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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당신'은 이런 사람이다. 대대로 물려 내려온 재산이라고는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자주성가를 하지도 않았고, 어머니가 대기업의 외동딸도 아니며, 변호사, 판사, 검사, 의사, 변리사, 회계사, 교수, 연예인 따위의 돈 많이 버는 전문직에 종사하지도 않으며, 결혼을 약속한 애인이 부잣집 외동아들이나 외동딸도 아닌 그런 사람이다. 한마디로 뭐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소시민이다.


당신은 부자를 꿈꾼다. 당신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소시민들이 부자를 꿈꾸며 서로 그 꿈을 인정하고 응원한다. (남들보다 더 가져야 부자가 될텐데 왜 남들에게도 더 가지라고 하는지는 의문이다. 선량하기 그지 없다.) 부자라는 단어가 너무 노골적이라 쓰기 껄끄러우면 남부럽지 않은 삶, 풍족한 삶 정도로 표현할 수도 있다. 뭐가 되었든 간에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단언컨데, 그런 당신은 부자가 될 수 없다.


성공은 아무나 하나

로또 1등에 당첨되면 되지 않느냐고 얘기할 것이다.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이 어찌저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 확률이 800만분의 1이다. 800만 번을 하면 한번은 1등에 당첨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한번에 800만개의 숫자조합을 찍으면 1등이 나온다는 얘기다. 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결과는 부자일지 몰라도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니 '성공'이라 할 수 없다. 그냥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인생 역전'에 지나지 않는다.


사업을 해서 크게 성공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 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도 가능한 얘기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성공하는 사람의 수가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앞에서 얘기한 로또 1등도 최소 1년에 50명 넘게 나온다. 한 회에 두세명 이상이 당첨되니 실상 200명은 넘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십억의 돈을 벌어들일 정도로 사업에 성공하는 사람이 로또 1등에 당첨되는 사람보다 많을까?



위에서 말한대로 '당신'은 쥐뿔 가진 것도 없다. 자본주의의 체제 안에서 자본의 크기는 생산의 크기를 좌우하며 생산의 크기는 이윤의 크기를 결정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시작한 당신의 사업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야 거대한 이윤을 남길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라. 아마 앞이 깜깜할텐데 그게 정상이다. 중소기업의 50%가 창업 2년 이내 도산하며 5년 후에는 30% 밖에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생각보다 많이 살아남았다고 안도할 일이 아니다. 법인이 살아 있다고, 폐업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두들 흑자를 팍팍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사업할 자격조차 없다.


좋은 아이템, 좋은 아이디어 하나면 짧은 시간에도 거대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것도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그런 성공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지도 않다. 하지만 만사에는 흑백이 있고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인생이나 사업이나 '한방'에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한방'에 피를 토하며 쓰러질 수도 있다. 성공 사례를 찾아보기 쉬운만큼 마음만 먹으면 실패 사례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당사자들이 쪽팔려 하고, 당사자들이 쪽팔릴까봐 말을 안하고 쉬쉬할 뿐이다.


평등한 제도

그래도 민주주의 국가인만큼 누구에게나 같은 제도적 환경이 부여되니 노력 여하에 따라서 그 결과가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애써 안심을 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제도적인 평등이 주어지는 것도 맞고 노력 여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제도적인 평등이 오히려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생각은 안해봤는가? 제도에 의해서 가진 자나 못가진 자나 동일한 혜택을 받는 것만 생각하면 그렇게 불편하진 않다. 하지만 제도적 평등 아래에서는 가진 자나 덜 가진 자나 패널티조차도 평등하다. 


그런데 그 패널티가 양 쪽에 동일한 수준으로 느껴질 수는 없다. 제도 자체가 자본주의의 토대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가는 바람에 보석금 3000만원이 필요한데 가진 사람과 덜 가진 사람에게 그 3000만원이 같은 무게의 부담이겠는가? 제도적 평등 아래에서 많이 가진 쪽이 유리한 경우를 찾기란 별로 어렵지 않다. 사회주의적, 빨갱이류의 발상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실제로 벌금을 수입에 따라 차등 부과하는 제도를 가진 유럽의 선진국들이 당황할테니까 말이다. 굳이 스웨덴을 빨갱이 나라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래도 그 제도에 영향력을 주는 투표권만큼은 한 사람에 한 표씩 있으므로 다행이라 여길 수 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런데 그 투표권은 부를 좀 더 나눌 수 있는 제도를 만들 수는 있어도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게다가 그 투표권 중에 많은 수가 가진 자들을 위한 제도를 향해 던져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록 지금은 가난하지만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꿈이 있기에 언젠가 누리게 될 지도 모를 가진 자들을 위한 제도에 표를 던지는 것이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마음만은 이미 부자인 것이다. 투표권은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주지도 못할 뿐더러 그나마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 것조차 막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부는 세습된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쌓아올린 부는 자본주의 체제가 무너지거나 체제가 심하게 흔들리지 않는 이상 그 가치를 잃지 않는다. 은행에 쌓아둔 돈이, 금고에 넣어둔 금괴가 그냥 없어지는 일은 없다. 게다가 자본주의의 특성상 그 부가 자본 역할을 해서 또다른 부를 낳거나 부의 크기를 늘린다. 그 부를 소유한 사람이 자연의 이치에 따라 그 생명을 다했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또다른 소유자가 (무조건) 나타나며 부는 세습된다. 오죽하면 '세습 자본주의'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반대로 가난 역시 세습된다. 당신의 아버지가 부자가 아니라면 당신도 부자가 못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출발선이 다르니 뭘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당신이 대학등록금을 모으기 위해 방학 내내 알바를 뛸 동안 부자 부모를 둔 사람들은 어학연수를 떠난다. 그렇게 여덟 학기를 지나고 나면 같은 시간을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경쟁력의 격차가 눈에 띄게 벌어지고 만다. 그리고 그 경쟁력의 격차가 곧 얼마나 많이 갖느냐로 귀결된다. 슬픈가? 나도 슬프다.



부자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위에서 말한 '당신'의 자격에 해당된다면 부자가 될 생각은 버리고 다른 길을 찾아라. 어차피 부자가 되려 한 것이 날 버린 옛 애인에 대한 복수이거나 조상의 오래된 염원 따위가 아니잖는가. 그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부자를 꿈꾸었다면 부자의 꿈을 버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실현 가능성이 낮은 부담스러운 목표를 내려놓았으니 그만큼 다른 것에 집중할 여유도 생길 것이다. 


너무 팍팍하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들 얘기하는 '현실'을 그대로 말한 것 뿐이다. 결혼 얘기가 나와도 현실, 꿈 얘기가 나와도 현실, 연애 얘기가 나와도 현실, 인생 얘기가 나와도 현실 타령을 하면서 비현실적이기 그지 없는 '부자의 꿈'은 왜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현실은 팍팍하다.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는 이상 당신은 부자되기가 쉽지 않다. 굳이 부자가 되겠다고 한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월세에 살아도, 소형차를 몰아도, 명품 가방을 들지 않아도 행복할 방법을 찾는 것이 당신에게는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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