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삶과 사람

타인의 불행에서 나의 행복을 찾지 마라

김성열 2014. 6. 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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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불행과 나의 행복

남의 불행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나의 행복을 확인할 때가 있다.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보면서, 전쟁으로 인해 쓰러져가는 중동 지방 사람들을 보면서, 가깝게는 허름한 옷을 입고 허드렛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래도 난 저 정도 상황은 아니니 그들보다 행복하지 아니한가" 라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섬찟한 발상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 발상의 틀이 타인이 불행할수록 내가 행복해진다는,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물론 노골적으로 타인의 불행을 통해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드물다. 일상에서 접하는 타인의 불행은 나의 동정심을 일으켜서 자선의 행위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의식의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설사 타인의 불행에서 자신의 행복을 엿본다고 해도 기껏해야 현재 상태에 대한 자기 위안이나 합리화, 자신과 상황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위한 정도일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자기 위안으로, 얕은 수준의 자기합리화로 삼는다면 괜찮겠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게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상대적인 인식의 틀 안에서 행복을 추구하려 들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벌고, 더 높은 지위에 있고, 점수를 더 많이 받은 사람이 나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보다 더 벌고, 너 높은 지위에 오르고, 더 많은 점수를 얻기 위해 발버둥친다. 결국 나보다 덜 행복한 사람이 많아야 내가 더 행복해진다는 의식 안에서 행복을 쫓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자본주의의 행복

이는 자본주의가 소유를 행복으로 둔갑시킨 덕분이다. 물질적인 것은 더 많이 가질 수도 있고 덜 가질 수도 있다. 이는 누가 더 편하고 덜 편하고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권력, 지위, 물질을 많이 소유할수록 행복하다고 정의한다. 만약 사람들이 그 기준조차 애매한 '소유=행복'이라는 등식을 벗어나 자기만의 행복의 정의를 갖고 있다면 지금과 같은 경쟁적인 행복 쟁탈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소유를 행복으로 둔갑시켰기 때문에 행복의 등급이 매겨지고 상대적인 행복과 불행이 생긴다.


나의 행복은 내가 정의한 나의 행복이어야 한다. 또한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 의미 없을 수는 있어도 어떤 사람에게 불행이어서는 안된다.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더 많은 점수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더 편하게 살기 위해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행복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 그것을 행복 자체로 여기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내 행복의 토대로 삼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진실로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부터 내려야 한다. 공무원 합격이나 대기업 취직, 돈 많이 버는 것, 좋은 차와 큰 집을 갖는 것은 삶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그것을 이루는 것을 행복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공무원 시험 합격이 행복이라면 그 행복은 불합격한 사람들을 불행한 사람이 된다. 좋은 차와 큰 집이 행복이라면 작은 차와 작은 집을 가진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된다. 



나의 행복 찾기

하지만 내가 누구보다 월급 80만원 만큼 행복하다고, 자동차 배기량 300cc 만큼 더 행복하다고, 아파트 전용면적 7평 만큼 더 행복하다고 하진 않는다. 행복은 원래 그렇게 표현할 수 없는 것임을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나보다 불행한 사람이 많을 수록, 나보다 남들이 더 불행할수록 내가 행복하다면 과연 그 행복이 우리가 알고 있는 행복이 맞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세상이 그런 것을 어쩌냐고 하지 말자. 세상의 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해서 편리함이 행복이 되고 불편함이 불행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틀 안에 갇혀 있으면 타인의 불행이 내 행복이 되는 "만인이 만인에 대해 늑대와 같은" 상황이 계속 될 수 밖에 없으며 그 곳에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이 아닌 승자와 패자,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밖에 남지 않는다.


삶의 수단을 얼마나 소유하느냐를 행복의 잣대로 삼는 행복은 세상이 정의한 행복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마케팅과 상업적 프로파간다로 조장한 거짓 행복이다. 우리는 세상이 정의한 행복이 아니라 스스로 정의한 행복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경쟁에서의 승리와 그 전리품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다. 그 행복이 무엇인지는 각자가 생각할 일이다. 어쩌면 세상의 사람 수 만큼이나 행복의 가지 수가 있을지도 모르며 유일무이해서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의 행복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행복에 한 걸음 가까이 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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