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삶과 사람

직업의 귀천은 현실 - 현실이면 무조건 최선인가?

김성열 2013. 11. 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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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판사, 변호사 같은 직업이 좋은 직업이야?"


삼겹살을 감싼 상추를 입안 가득 넣어서 우물거리던 딸아이가 묻는다.


 "직업은 사람에 따라 좋고 나쁠 수 있지만  직업이 그 자체로 좋고 나쁜 것 없어. 좋은 직업인지 아닌지는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이 판단하는게 맞지 않을까? 변호사가 하기 싫은데 변호사가 되었다면 그건 그 사람한테 좋은 직업이 아니지. 변호사가 되어서 사람들을 도와주는게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직업일거고."


"그런데 어른들은 왜 판사, 변호사 같은 직업을 좋은 직업이라고 해?


꿀꺽 소리가 나도록 고기를 삼킨 딸아이가 다시 묻는다.


"요즘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면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 그 기준에서 봤을 때 좋다는 얘기겠지. 하지만 직업은 내가 즐겁고 행복해서 하는 일이 제일 좋아. 넌 피아니스트 되고 싶다고 했잖아? 엄마가 원해서 피아노 배우고 유학 갔다 오고, 그래서 피아니스트가 된 친구가 있다고 생각해봐. 그런데 그 친구는 사실 미용사가 되고 싶었어. 너는 원래부터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해서 피아니스트가 되었어. 누가 더 행복할까?"


딸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 많은 회사 회장 딸이 젊은 나이에 자살을 했어. 돈은 평생 써도 모자라지 않을만큼 갖고 있고, 하고 싶은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왜 그랬을까?"


질문이 어려운지 눈만 말똥거리고는 아무말이 없다.


"그 언니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대. 그런데 집에서 그런 남자와는 사귀지 못하게 했대. 그래서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자살한거래...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게 아니야. 아빠는 돈은 생활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사람들은 돈 많이 버는 직업을 좋은 직업이라잖아? 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도 아닌데 돈 많이 버는 직업이 뭐가 좋아?"


"아빤 지금 행복해?"


딸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묻는다.


"아빠는 행복해. 차도 있고, 잠 잘 집도 있고, 가끔 이렇게 고기 구워먹어도 되고..."


"결혼도 하고 애도 있고... 히히히~"


아내도 있고, 딸들도 있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대신 해주면서 딸아이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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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귀천이 갖는 속뜻

많은 이들이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고 한다. 귀천의 기준은 몇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수입이 많고 적으냐가 큰 기준으로 적용된다. 권위나 인기 같은 것도 기준이 되지만 결국 권위나 인기가 많은 직업은 대부분 수입도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끝과 시작은 돈 얘기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런거다. 일은 내가 한다. 나와 일의 관계에서 그 일은 좋고 나쁨은 나에게 좋고 나쁨일 것인데, 내가 중심인 그런 얘기들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일은 내가 하지만 그 일에 대한 가치 판단은 남들이 규정한 무엇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직업에서 느끼는 개개인의 만족감보다는 수입이 얼마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직업에도 귀천"이 있다라는 말의 실체다.


노동에는 귀천이 없지만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들을 때는 그럴싸 하게 들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직업에도 귀천이 있다고 그냥 말하면 뭔가 속물스러워 보일까봐 싶어서 만든 표현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직업은 노동의 형태에 따라서 정의되므로 어느 한쪽에 귀천이 있다면 다른 쪽에도 그 속성이 같이 존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에 귀천이 없으면 직업에도 귀천이 없다.


돈을 버는 것, 매우 중요하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내가 즐겁고 행복한 일을 찾거나 갈망하는 것을 어리석은 행동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반대로, '귀한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현명하고 바르다고만 해서도 안된다.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없다를 논리적으로 풀지도 말자. 그냥 그런 개념은 머리에서 지워버리자. 다른 사람의 판단이나 등급 매기기 보다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만 생각하자.


내가 행복한 직업 찾기

사회 생활을 어느정도 하고 나면 그 궤도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아직 그 궤도의 압박에서 그나마 덜 옥죄인 세대들은 될 수 있으면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직업을 찾는 것에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 수입의 크기나 안정성을 기준으로 구하는 직업은 좀 더 맛있고 많은 밥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일 뿐이다. 


물론 즐겁고 행복한 직업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각자에게 달렸고, 막상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찾아나 보자.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런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찾아나 보고 얘기하자. 찾아 보는 것조차 하지 않는다면 지나친 패배주의다. 못찾으면 또 어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들의 판단을 제 것인양 사는 것보다야 훨씬 멋지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밥보다는 꿈이 더 아쉽기 마련이다.


배가 불러야 꿈도 꾸죠~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사회진출이 가까운 친구들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때는 마음이 아프다 못해 억장이 무너진다. 미안한 얘기지만 배고픈 바람에 잊혀지는 거라면 그건 꿈 축에도 못낀다. 꿈이란 눈만 뜨면 생각나고, 당장 배가 고프더라도 이루고 싶은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공무원이 되거나 대기업에 취직하는게 꿈이 아니라면 다행이긴 하다. 게다가 꿈은 언제 꾸어도 누가 뭐라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다만,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있거나, 아직 커리어에 얽매이지 않았다면, 직업에 대해서 세상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남의 판단과 기준으로 사는 것은 지금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하게 될테니, 지금은 좀 마음대로 하고 사시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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