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삶과 사람

스트레스 관리 - 스트레스의 원인을 관리하자

김성열 2013. 10. 2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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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인류의 숙제인 '스트레스'. 어떻게 풀어야 하냐는 모든 사람들에게 숙제입니다. 더구나 활동의 폭이 한창 넓어지고 있는 20/30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스트레스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겁니다. 언젠가 임직원의 역량 재고, 스트레스 관리, 코칭 같은 것들에 대한 교육을 하신다는 분을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도 듣고, 그 분이 하신다는 교육 과정 안내 자료도 보고 그랬는데, 그중에 스트레스 관리 교육이라는 것에 눈이 갔습니다. 소개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빠른 시간 안에 해소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하는 기법을 익히고 적용할 수 있게 되어 업무 성과를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이 소개를 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스트레스는 어떤 상황이나 사건으로 인해 갖게 되는(필요치 않더라도) '상태'입니다. "자동차가 과속으로 달리다 미끄러져 중앙분리대에 닿아 운전석 문짝이 긁혔다"라고 한다면 '미끄러진' 사건으로 인해 '문짝이 긁힌' 상태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스트레스는 '문짝이 긁힌' 것과 동일한 '상태' 입니다. 어떤 사건의 결과라는 얘기입니다. 사건의 결과는 관리의 대상이기 보다는 '수습'의 대상입니다. 언뜻 보면 사건의 결과를 관리하는 것이 나빠 보이지도 않고, 당연히 해야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보렵니다.


'운전'은 차가 올바르게 달릴 수 있도록 '관리'하는 행위입니다. 운전을 잘못해서 사고가 났다면 그것은 '관리'를 잘못한 것입니다. 스크래치가 난 문짝만 놓고 본다면 관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앞서 운전을 하다 사고가 난 전체 네러티브를 놓고 보면 스크래치 난 문짝의 관리는 사실상 사건의 결과를 '수습'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결과'의 관리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사건의 결과에 대해서 관리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라, 수습할 결과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사건의 발생 원인은 관리하지 않고 그로 인해 발생한 사건을 관리하는데만 급급한다면, 눈 앞의 상황 수습은 되겠지만 비슷한 사건이 또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매번 같은 원인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같은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안스럽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쉽게 리얼하게 얘기하면 변비로 인한 숙변 때문에 생긴 피부 트러블의 궁극적인 해결 방법은 숙변을 제거하는 겁니다. 변비! 비켜~ 숙변이 쌓여 있는 한 피부 트러블에 대한 관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느 지점에 도착했다 싶어도 결국은 항상 그자리일 뿐입니다.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술을 마시기 때문에 대한민국 40대 간암 사망률이 높은 겁니다. 명품 가방을 사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이 있다면, 간암보다야 낫겠지만 그래도 난망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타자(他者)와의 관계, 물질적인 궁핍함, 무지(無知)로 인한 좌절감과 긴장, 심인성(心因性) 공포나 실질적인 두려움...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결과의 수습책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스트레스의 원인들에 대한 관리입니다. 스트레스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것이 어려우면 정도가 덜한 스트레스가 되도록 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똑똑하면 잘 관리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똑똑하다는 것은 기억력도 좋고, 계산도 빠르고 정확하며, 사물에 대한 인지 수준도 높고 정확하다는, 그런 표면적인 얘기입니다. 앞에서 얘기한 스트레스의 원인들은 똑똑함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스트레스의 원인들을 혼자서 100% 제어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100%의 권한을 갖지 못한 것도 모자라 별로 똑똑하지도 않은 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진퇴양난이자 복불복 사면초가입니다. 하지만 인생에 정답이 어디있겠습니까. 인생은 산수가 아니니까 정답은 없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서 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앎(현명함과 통찰)을 겸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경험은 3일완성 단기 속성으로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외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과외 선생님을 찾는다 해도 시험을 대신 쳐주진 않습니다. 그러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깊이를 더하는데 몰두해야 합니다. 지식을 쌓고, 경험하는 것에 몸과 시간을 아끼지 않으며, 그 지식과 경험을 곱씹어서 깊고 풍성한 나만의, 그러면서도 보편적인 앎을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일마다 해법이나 대처법이 다를 듯해 보이지만, 우리가 겪는 일들에 대한 해법은 그 기원을 찾아보면 몇몇의 궁극적인 것에 도달하기 마련입니다. 


깊이 있는 앎에서 나온 통찰과 현명함은 스트레스의 원인을 다스리는데 똑똑함만 보다야 더 나을 것입니다.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던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의 교육(배움)에 대한 의견을 끝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시건방 떨지 말고, 나 이외의 주변에 관심주고, 배려하고, 관용하며,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벌떡거리는 내 심장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살면 좋겠습니다.


교육은 성숙기를 위한 준비가 아니고 끊임없는 정신의 성장과 끊임없는 생활의 발전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학교는 정신적 성장의 수단을 제공할 뿐이고, 나머지 일은 경험의 흡수와 해석에 달렸다. 참다운 교육은 우리가 학교를 졸업한 뒤에 시작되는 것이니, 우리가 죽기 전에 교육을 그만둘 이유는 전혀 없다. - 존 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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